길을 가다 보면 마을 입구에 서있는 장승을 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장승배기라는 마을이 이야기 해주듯 마을 언덕에는 장승이 서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의 형태인데 돌을 다듬는 기구가 발달한 지금은 석장승이 많이 조성된다. 과거와 달린 각 지역이나 지역의 카페, 공원등에서는 관광 목적이나 사람의 눈을 잡을 목적으로 장승이 많이 조성되고 있다. 장승의 일반적인 형태는 위쪽에 사람의 얼굴 형태를 그리거나 조각하고, 아래쪽은 긴 기둥 형태인데 이곳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보통 남녀 한쌍이 되어 서 있다.
전라도와 경상남도 해안에서는 장승, 장성, 벅수, 벅시, 법수, 당산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흔히 장승과 벅수라는 말이 일반적이다. 전라도에서는 당산 할이버지라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고창의 오거리 당산을 할아버지 당산이라 부르는 개체도 있다. 충청도에서는 장승, 장신, 수살막이, 수살이, 수살목이라고 부르는데 수살막이라던가 수살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마을의 질병을 막거나 마을의 입구에 설치한다는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장승이라는 이름이 굳어졌으며 이름하여 전국적으로 장승이라는 이름이 표준이 되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돌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장승의 일반적인 형태에서 미륵의 상은 지극히 흔하다. 특히 불가에서 세우는 장승의 경우는 대부분 미륵상이다.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 우석목(偶石木), 옹중석(翁仲石), 거오기, 거액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의 장승문화는 대양의 거석문화의 영향이다 하는 이론과 일반적인 장승문화라는 주장이 상반되고 있다.
장승의 기원은 다양하다. 일반적인 기원은 고대의 남근숭배(男根崇拜)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사찰의 토지경계표시에서 나왔다는 장생고표지설(長生庫標識說)이 있다. 그러나 이 토지경계설은 사실적으로 이용되지만 역사적으로 그 이전에도 선돌의 역할이 있었으므로 영향은 미쳤지만 원류는 아니라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그밖에 솟대, 선돌, 서낭당에서 유래하였다는 고유민속기원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유래에 덧붙여 일부 마애불을 선돌에 새기는 과정도 발견되므로 일부 학자들은 유사이전부터 있어온 선돌 문화가 장승의 기원이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장승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석장승과 목장승으로 나누는데, 현재 남아있는 목장승은 드물다. 최근에는 석장승을 많이 세우는 추세이지만 재료의 문제로 인해 목장승에는 세월을 이기는 힘이 부족하다. 최근에도 목장승을 많이 세우는데 단순히 신앙이나 경계 표식처럼 사용되던 지난 과거와는 달리 관광목적, 혹은 예술적 조각의 목적으로도 세우는 경향이 있다.
장승의 형태는 다양한데 일반적으로는 사람의 모습이나 도깨비와 같은 얼굴을 새기는 것이지만 지역에 따라, 혹은 그 마을의 풍습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특이하게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솟대형, 통나무에 먹으로 사람 얼굴을 그리고 글자를 써서 나무에 묶어 두거나 기대어 놓은 목주형(木柱形), 인태신(人態神)을 조각한 신장조상형(神將彫像形)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신장조상형으로 일반적으로 장승이라는 말은 신장조상형을 의미하는 정도로 일반적이고 가장 많은 형상이다.
다양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나 지역의 특색이 묻어난다. 장승은 생김새에 따라 인면형(人面形), 귀면괴수형(鬼面怪獸形), 미륵형(彌勒形), 남근형(男根形),. 문무관형(文武官形) 등이 있다.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며 복합적이기도 하는데 지역적 특색과 용도, 또는 종교적 목적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기도 하다.
장승이 조성되면 글씨를 새기기도 하는데 몸체에 쓰여진 이름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군이 일반적이다. 이는 음양의 이치를 이야기 하기도 하고 천지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으로 단순히 땅과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지간의 기운을 조화사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글이다.
그밖에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과 같은 글씨가 새겨지기도 하는데, 이는 도교적 장군류에 해당된다. 동방청제(東方靑帝)장군, 서방백제(西方白帝)장군, 북방흑제(北方黑帝)장군, 남방적제(南方赤帝)장군 등의 방위신장류(方位神將類)은 방향을 가르키는 것 같지만 오행을 지정하고 있으며 아울러 불교의 사방신장, 즉 불교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장류의 사상과도 결부되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밖에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은 미륵의 형상을 지닌 경우가 많으며 방생정계(放生定界) 등의 호법신장류가 있다. 풍수도참과 결부된 진서장군(鎭西將軍),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등의 비보(裨補)장승류 등도 있다. 이는 마을의 입구나 허한 곳에 세운다는 특징이 있다.
전국적으로 산재하고 있는 장승은 단순한 경계표나 이정표의 역할과 함께 잡귀와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이며,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앙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고 신성시된다. 장승은 신앙과 비보의 중간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불교의 문화가 도입된 후부터는 신앙적 가치가 상승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국적으로 행사의 방식이나 순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장승이 있는 마을은 전래되어 오는 동제(洞祭)의 하나로 장승제가 있다. 즉 겉으로 보아서는 산에 올라 나무를 깎고 장승을 깎는 것으로 지극히 단순하게 보이지만 이는 매우 어렵고 신중한 행사로 치루어진다. 이는 마을의 안녕을 빌고 마을에 가해지는 역질이나 병의 침입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것으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의 액을 밖으로 내몰고 마을을 정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제관이나 장승을 깎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고르는데 매우 신중하여 액이 없고 삼재가 없으며 복이 있는 사람으로 골랐으며 제관이나 장승을 깎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고 음식을 삼가며 여색을 멀리하여, 심지어 부부관계도 일정기간 금한 후에야 장승을 깎는 정성을 보였다.
목장승은 실질적으로 보존이 힘들기 때문에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장승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역사성을 존중하여 몇기의 장승이 보존되고 있다. 특히 전라도의 벽송사에 모셔진 목장승은 이미 오래된 것으로 훼손되고 나무의 한계로 인한 부식이 진행중이다.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목장승이 바바람에 부식되고 훼손되므로 대부분의 장승이 목장승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적게 조성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은 것은 석장승이 대부분이다. 석장승으로,는 경상남도 통영시(統營市) 문화동(文化洞) 벅수(제7호), 통영시 삼덕리(三德里) 부락제당벅수(제9호),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불회사(佛會寺) 석장승(제11호),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실상사(實相寺) 석장승(제15호) 등이 있다. 특히 실상사 석장승은 절 입구의 경계표시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물가에 서서 물을 건너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이 장승은 물에 떠내려 갔나 다시 찾아 세운 것이다.
눈여겨 볼 것은 문화재로 지정된 장승 중에도 국보에 근접하는 대작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더욱 철저하게 조사하여 장승도 보물 이상의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석장승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양산시(梁山市) 통도사(通度寺)의 국장생석표(國長生石表)가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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