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은 다양한 형식이 있으며 나라마다, 혹은 지방마다 생성되는 재료나 그 시대의 목적에 따라 형식이나 목적이 달라진다. 한국은 석탑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과거에는 목탑을 많이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목탑은 석탑에 비교해 오래가지 못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화재에 취약하여 고려시대 이전에 조성된 목재탑은 전화에 불에 타고 현재는 남아있지 못하다.
탑은 사찰의 표식이다. 사찰은 다양한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 건축물의 형태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찰이라고 하면 몇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판단한다. 즉 불상과 탑은 불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탑은 반드시 불교의 산물은 아니다. 서양도 탑이 있고 동양도 탑이 있지만 반드시 종교적인 특징으로 탑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탑의 존재가 불교의 이념과 사상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한국의 탑은 불교를 상징하는 매개체다. 탑은 순수한 우리나라의 말은 아니다. 범어(梵語)의 스투우파(Stupa), 또는 팔리(Pali)어의 투우파(thupa)의 음사에서 유래된 약칭이다. 범어로 쓰여지거나 불리던 불교 용어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면서 많은 말이 음역되거나 새로운 형태로 표기되는데 탑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탑은 불심의 표상이다. 즉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사상에서 탑은 단순히 구조물이 아니라 부처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보물과 같다. 즉 돌아가신 부처의 유물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것은 아니다.
사리의 봉안 유무에 따라 탑파, 또는 지제(차이티야, Chitya)라고 하는별개의 용어가 있다. 최초에 탑이라는 의미는 바로 이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구조물로서의 탑이다. 사리를 봉안한 탑을 스투우파 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의 사리가 무한할 수는 없다.
사리가 없는 탑도 있다. 사리를 봉안한 탑에 비하여 사리가 없는탑을 차이티야 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최초에는 탑이 사리를 봉안하는 기념물적인 존재로, 부처를 따르고 부처의 사상을 따르는 신도들과 도반들의 신앙물이었으나 부처의 사리는 무한하지 않았다. 부처의 사리가 분과나 증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지극히 소수의 일로 부처의 사리를 마냥 나눌 수는 없었다.
사찰은 계속 증대되었고 인도뿐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태국등의 국가로 전개 전파되었다. 각 지역에서는 불전을 세웠고 부처의 흔적을 찾았다. 결국 탑을 세우고 부처의 사상이 담긴 불경을 넣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으로 탑은 이미 대중화 되었고 부처의 사상을 의미하는 장소, 혹은 조성물이 되었다.
탑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 사리가 있는 스투우파는 방분(方墳), 원총(圓塚) 또는 고현처(高顯處) 등의 뜻으로 부처님의 신골을 봉안하는 묘소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부처가 회장되어 나온 사리는 부처의 유골과 같고 부처의 사상을 의미하며 부처의 현신과 같은 것이므로 충분히 신앙의 존재가 되었다.
사리가 모셔진 탑, 수투우파에 비하여, 사리가 모셔지지 않은 차이티야는 애초에 사리가 아닌 불경이나 다른 불교적 물건을 넣었다. 이후에는 단지 탑을 세우는 것으로 그 목적이 되기도 하였다. 이 경우에는 신령스런 장소나 고적을 나타내는 기념탑적인 것으로 영묘(靈廟), 정처(淨處),복취(福聚) 등의 의미이다.
불교 사상이 저변에 깔린 동양에서의 탑은 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이다. 물론 이후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모으는 사리탑이라는 구조물이 조성되지만 아직도 탑은 종교의 표상이고 종교적 역할을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전 세계적으로불교를 상징하는 다양한 문화로서의 탑이 존재한다. 그러나 서양의 탑과는 그 조성형태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중국과 일본, 한국과 태국의 탑은 그 형태나 조성 방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바탕은 인도의 탑파다. 최초에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열반 후 화장을 함으로써 사리를 얻게 되었고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 바로 탑파, 불탑이 되었다. 그러므로 불탑은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지금은 신앙의 매게체로 인식되고 있음이 다르지만 그 기본 사상은 다르지 않다.
탑이 건립된 초기에는 근본되는 여덟 탑이 중심이 되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탑파의 신앙은 더욱 왕성하여 수많은 탑을 쌓게 되었다. 아울러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다양한 탑파 미술이 생겨나게 되고 지역과 나라, 민족의 특성과 전파지역의 확대에 따라 그 양식이 조금씩 변모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불교의 탑파는 전체적으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탑의 건립은 불교의 융성함과 전파를 나타낸다. 특히 아쇼카(Asoka)왕의 팔만사천탑 건립은 역사상 유명한 일이며 불도들의 종교적 염원에 따른 사리 분배에 의해 불교가 전파된 여러 나라에서도 수많은 탑의 건립을 보게 된다. 단순히 인도라는 나라를 건너 유라시아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금세기에 들어서는 서양에서도 불교의 문화와 사상이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호응을 얻으며 점차 전파되고 불교 미술과 문화의 한 측면으로 탑의 조성도 전파되고 있다.
인도에서 출발한 탑파미술은 급격한 문화의 형성을 이루었다. 불교사상의 전파는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아시아지역의 전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종교는 사람을 모아 집단을 만들고 집단은 문화를 형성한다. 포교를 위한 건물과 상징물을 만들고 일정한 규범을 형성한다. 불교도 이와 같아 전파된 나라에 따라 각기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니게 되는데 건축물은 각각의 국가가 지닌 고유한 형상을 따라 건축된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가 서로 나뉘어 있지만 각각의 불교 교파가, 유사한 형식의 목재와 석재, 건축의 기본 형상을 가지는 것은 건축에도 불교 사상이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탑도 다르지 않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라는 이 세나라는 북방불교를 꽃피운 나라답게,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건축의 형태와 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불상과 같은 엄격한 규범 속에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따라 비교적 자유로운 건축기술이 적용된 것이었다. 즉 불교가 전파되는 각국의 건축기술에 따라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그대로 탑파 건축에 적용하였다.
이로써 인도의 탑이 그릇을 뒤집어 놓은 듯한 복발(覆鉢)형으로 밥그릇이 엎어져 있는 형태의 불탑임에 비하여 중국을 위시한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한결같이 여러 단을 지닌 중층(重層)의 탑으로 전개되어 중국에서는 목탑이 주류를 이루었고 한국에서는 산하 도처에서 생산되는 화강석을 주재로 하여 수많은 석탑을 만들었다.
탑은 단순히 불교의 상징만은 아니다. 탑은 사리를 봉안하는 구성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목적으로도 조성되었다. 물론 불교적 용도로 조성하는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풍수적으로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즉 지세가 심하거나 약할 경우 지세를 누르거나 기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세우기도 하는데 이는 부처의 가피력으로 무엇인가를 보호하고 보충하고자 하는 비보사상의 발로였다. 이와 같은 목적의 불탑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가평 운악산 현등사의 지진탑이나 전라도 화순의 운주사 불탑과 같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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