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부처가 나투시는 불가의 여러 당우(堂宇) 중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宮)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각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적멸보궁은 한결같이 당우를 지었으므로 전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적멸보궁은 반드시 당우 내에 모셔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는 당우를 지어 기념하고 있으며 전각으로 기도도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각으로 인식이 굳어졌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불경에는 부처의 행적이 모두 들어있다. 불경은 석가모니 부처의 이야기며 사상이고 행적이다.《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 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 몸이 되었다. 적멸보궁은 본래 작은 언덕처럼 돌출되어 두두룩한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불교 전성국가에서도 적멸보궁은 두둑한 언덕 모양의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는데 한국의 경우 이같이 두둑하고 불룩하게 튀어올라 돌출된 터의 경우 풍수지리에서 주장하는 혈(穴)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선각자들은 일찍부터 풍수에 대한 혜안이 높았고 불교 선지자들은 대부분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대부분 풍수학자들이었다. 이 땅에 문자화된 풍수를 도입하여 기존의 자연 발생적인 토착풍수, 혹은 한국정통풍수와의 화합을 이루어 풍수의 비조로 불리는 분도 역시 불가 출신으로 도선국사시다. 불가의 선지식은 풍수의 대가셨다. 따라서 진신사리를 모시는 땅은 좋은 곳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명당으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외는 있어 진신사리를 이용해 불력으로 국가적 위기(危機)나, 산중에서의 호환(虎患), 혹은 국가적으로 불합리한 폭정(暴政)이나 국지적인 지역의 수해(水害)를 막겠다는 의미에서 비보로 사용되어진 경우도 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진신사리를 모실 수 있는 곳은 가장 좋은 곳,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 산천 정기가 모이는 곳을 찾으려다 보니 대부분 명당(明堂)에 안치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그러나 적멸보궁은 반드시 절집에서 말하는 전각의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며 구조도 절집 구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이곳에서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이 보이는 구조다. 한국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의 월정사(月精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강원도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이 같은 통계를 볼때 오대적멸보궁에서 4곳이 강원도다. 이중 유일하게 경상지역의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해 계율 근본도량 불보종찰(佛寶宗刹)이 되었는데, 부처가 안치되어야 할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고 불당 내부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 놓여 있다. 또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야 할 자리는 창으로 훤히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뒤로 금강계단이라고 불리는 곳이 보이는데 이곳에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월정사 적멸보궁(강원유형문화재 28)은 불사리를 안치한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고, 다만 전각 뒤쪽의 작은 언덕에 부처의 정골사리[佛頭骨一片)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세존진신탑묘(世尊眞身塔墓)가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에는 부처의 불사리를 안치한 석가사리탑(강원유형문화재 31)이 있는데, 뇌사리를 안치하였다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한다. 설악산 봉정암은 가장 오르기 힘든 곳으로 다른 곳과 달리 바위위에 모셔져 있다.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강원문화재자료 32)은 다른 네 곳과는 달리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으로, 산 위에 수마노탑(보물 410)이 있다. 사자산 법흥사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과 자장이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그러나 역시 법흥사의 적멸보궁에도 진신사리가 안치된 정확한 곳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이 적멸보궁으로 칭송되는 것은 과거의 기록과 전해지는 불가의 풍습과 전설에 따라 이곳에 진신사리가 봉안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된다. 그 밖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경상남도 사천시 다솔사(多率寺) 등에도 적멸보궁이 있다. 이곳 말고도 여러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는 이유로 적멸보궁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부처님의 사리라 해도 진신사리 중 정골사리를 모신 곳을 따로이 작멸보궁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불자들의 신앙의 모태이고 기도처이기도 하지만 허술한 곳이 아닌 명당터에 모셔져 있다는 측면으로 보아서 풍수인들의 관람, 혹은 관산지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진정한 풍수인이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닦고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막연하게 패철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읽어 법안(法眼)으로 만족하거나 그저 글귀에 현혹되어 풍수의 기본을 망각하고 우매한 사람을 속이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산천의 기운이 모이는 명당을 찾아 배우고 기학(氣學)을 익히고 기공(氣功)을 수련하여 지기를 몸으로 체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훈련의 장소로 적멸보궁은 더 할 수 없는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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