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해야 하며 음식물도 물이 없으면 조리가 불가능하다. 식수나 용수를 얻기 위해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하는 물구덩이를 우물이라 한다. 넓은 의미로는 물우물, 온천정, 유정(油井), 천연가스정 등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물이라 할 때는 물을 가두는 우물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은 음식의 조리에서 가장 일차적인 필수 요소다. 사람의 몸이 수분을 다량 함유하여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식료품을 씻는 데서부터 가공, 조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빠짐없이 쓰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마을을 형성하여 모듬살이를 했다. 우리 조상은 음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우물보다 샘을 먼저 확보하였을 것이다. 또한 샘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지하수는 식수용으로서 양적으로 안정성이 있고 수질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하천수나 빗물보다 우수하여 옛날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샘에 의존하여 생활해왔다. 그런데 지표로 솟아오르는 샘물이 항상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므로 강물을 식수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땅 속의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파기도 했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나 그 황후의 탄생 신화에 보이는 나정, 알영정, 계정 등의 기록으로 보아 우물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우물보다는 샘이 먼저 이용되었을 것이다. 샘은 지하수가 자연히 솟아나는 곳으로, 선상지 말단이나 단구애(段丘崖), 산중턱, 화산의 산기슭 등 특정한 지형에만 있으므로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얻는 지혜를 터득하였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맨땅을 얕게 또는 깊게 파서 물이 괴게 한 토정(土井)과 바위틈 사이로 솟거나 흐르는 물을 괴게 한 석정(石井)이 있었다. 얕은 우물에는 수직우물과 수평우물이 있고 과거에는 두레박으로 퍼올렸으나 현대는 많은 변화가 있다. 현재사회는 샘이나 우물보다 인공적으로 만든 수도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물은 예로부터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우물은 지하수위가 낮은 시기에 굴착하고, 우물벽에는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예전에는 돌과 목재를 이용하였으나, 현재에는 콘크리트관으로 보호한다. 지하수는 빗물이 정화되어 저류된 것으로, 물이 필요한 지점에서 우물만 파면 물을 얻을 수 있는 우수한 수자원이다. 한국의 우물에는 토정과 석정이 있는데, 그 중 석정에는 바위를 옴폭하게 파서 만든 것과 그 위에 다시 시설을 첨가하여 완성하는 것이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우물을 파기 위해서는 풍수적으로 지형을 참고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설의 도입 이후 마을의 형국이 행주형인 경우에는 우물을 파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전국적인 현상으로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나서 물이 배에 가득 차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보아 풍수지리에서 물은 아주 중요했으며 우물도 아주 중요한 일부를 차지했다. 우물물의 용도 또한 다양하다. 음용수 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는 물을 퍼 올리기도 하는데 빨래터로 이용되는 것이 그 하나다. 또한 직접 먹지 않는 데 쓰는 것으로서 정화수가 있다. 공동우물에서 아침 일찍 누구보다 먼저 물을 길어다 부엌의 조왕신과 장독대 위에 떠 놓고 가정의 평안과 소원의 성취를 빌었다. 부인네들의 부지런함을 강요한 하나의 신앙적 관습이었다. 가옥을 지을 때도 풍수적으로 생각하였는데 반가에서 집을 지을 때는 내원에 한해서 우물을 파지 않았다. 물론 외원이나 담 밖에는 우물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반가는 마을의 공동 우물과 달리 내부에 독립적인 우물을 파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가일 경우에는 철저하게 그 구역을 나누었다. 소소한 가정이나 반가라 하여도 가세가 크지 않은 경우는 담 안에 우물이 있기도 했지만 담 밖에 우물이 있는 것이 풍수적 이치였다. 이는 우물이 병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상 때문인데 현대 과학으로 그 과학성이 증명되고 있다. 특히 우물의 경우에는 우기에 수인성 전염병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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