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처로 어울리는 봉국사
서울 성북구 정릉동 637번지에는정릉의 원찰인 봉국사가 있다. 사찰의 경우 봉(奉)자나 흥(興), 국(國)자가 들어가면 원찰인 경우가 많다. 정릉을 찾가가면 봉국사도 찾을 수 있다. 기도를 원하고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경우에는 추천할 만한 절이다.
봉국사 일주문은 큰 길가에 위치하여 진입에 주의를 요한다.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면 범종각과 사천왕문을 겸한 당우가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통행로가 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곡 막다른 곳에 주차장이 있다.
봉국사는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의 원찰(願刹)로 정릉길 옆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말 공민왕 3년(1354)에 나옹대사(懶翁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고, 조선초 태조 4년(1395)에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된 호국 사찰로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한 관계로 약사사라 하였다. 조선 후기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정릉을 수봉(修封)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정릉의 사초(沙草)를 새로 하는 동시에 정자각(丁字閣), 안향청(安香廳), 전례청(典禮聽) 등을 새로 세우면서 이 절을 원찰(願刹)로 하였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왕의 왕비의 묘 옆에는 원찰이 세워지거나 지정되는 경우 많은데 이 경우 흥국사, 봉영사, 봉건사. 흥왕사, 봉선사 등과 같이 봉(奉), 흥(興), 국(國)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신덕왕후를 받들때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역시 봉(奉)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후의 절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으며, 조선말 임오군란(1882) 때 봉국사가 소실된 것을 한계(漢溪), 덕운(德雲) 두 스님이 힘을 모아 이듬해에 중건하였다. 그 후 1898년에 명부전을 중건하고, 1913년에는 칠성각을 중건하였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一音樓)를 건립하였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살펴본다면 우선 일주문은 계곡의 가장 앞, 즉 한문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범종각과 사천왕문은 새로이 조성된 듯도 보인다. 풍수적으로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비보사찰도 아니니 사찰의 배치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허름한 당우에 만월보전(滿月寶殿)D라고 쓰여있고 사무실로 쓰고 있다. 그런데 정면의 가장 큰 당우, 즉 주된 건물에도 만월보전이라 쓰여져 있다. 그것으로 보아 새로지은 만월보전 이전에는 작은 당우가 그 역할을 하였던 듯 싶다. 그런데 만월보전 아래는 납골당이다.
만월보전은 동방 만월세계 약사유리광 여래가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불은 12대원을 세우고 성불하였는데 그 12대원 중에는 “내가 미래 세계에 성불하면 일체 중생의 병고를 없게 해 주리라.” 하고 서원을 세운 분이시다.
그 오른쪽에는 바위 위로 독성각이 자리하고 그 옆으로 명부전이 있다. 그 옆으로 천불전이 특이하게 산 계곡 안쪽의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밀양의 대법사와 대동소이하다. 역시 대법사와 바찬가지로 뒤쪽의 산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막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배산임수의 법칙에 의해 방향이 정해진 듯하다.
특히 눈을 잡는 당우는 독성각과 칠성각이다. 독성각은 만월보전 옆의 바위 위에 지어져 있는 두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당우지만 바위가 기맥을 증명하고 있다. 산위로 올라가 살피면 왕성한 기맥이 느껴지므로 더할 수 없는 좋은 기도처다.
또한 눈을 잡는 것은 칠성각이다. 광응전(光膺殿)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는 빛을 가슴에 안고 있다는 의미이니 그 의미가 심상하다. 계단은 천불전과 명부전 사이에 있는데 올라가 보면 서울 시내 정릉지역이 잘 보인다. 수구가 약간 열린 듯 하지만 이는 아마도 요사체를 지으며 훼손한 탓으로 보인다.
칠성각은 바위 암반위에 있는데 혈심은 아니라 해도 혈심에 가까운 강한 기운과 뭉쳐진 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곳보다 기도처로 좋은 곳이다. 도심과 가까운 기도처로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다. 왕성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 산책할 장소로 적당하며 풍수적으로 교쇄가 좋은 곳에 속한다. 단지 터가 좁은 것이 흠이기는 하나 천불전이 자리한 곳에서 보여주듯 자연스러운 장풍이 이루어지고 배산임수가 이루어진 곳이니 살펴보고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봉국사는 창건된 지 600년이 넘는 고찰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창건 당시나 그 무렵의 문화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시대 중후기 이후의 법향이 묻어나는 만월보전의 석조 석가여래상, 명부전과 그 안의 상설(像設) 등을 통하여 고찰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전각을 살펴보면, 금당인 만월보전(滿月寶殿)을 중심으로 천불전, 명부전, 광응전(光膺殿), 독성각, 일음루, 종무소, 수각 그리고 일주문 등이 있다.
봉국사는 인근에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게 부처님의 지혜를 듣고 배울 수 있는 터전이며, 도봉산 한 자락이 내려온 곳에 위치하여 도심속에서 사찰의 고즈녁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며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천연의 청정수가 샘솟아 봉국약수를 찾는 발길이 이른 새벽부터 성시를 이루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