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한점 없는 경국사
서울 성북구 정릉 3동 753번지에는 경국사가 있다. 경국사(慶國寺)는 북한산 동쪽에 자리한 고려시대의 사찰로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다. 이 사찰은 예로부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겉으로 본다면 경국사는 그다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입구 오른쪽에 바위가 많은 산이 보이는데 그 앞에 새로 세운 비석과 부도가 있다. 그 뒤의 산이 경국사의 좌청룡이다. 산세가 힘차고 보호사가 있으므로 눈여겨보아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빼곡하게 찬 현대식 건물이 사찰의 풍취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절의 경내가 바뀌며 분위기가 일신 변모되어 사찰에 온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경국사 사적기』에 의하면 670년 전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다. 절이 위치한 곳이 청봉(靑峰)아래 있었으므로 청암사라 붙인 것이라 한다. 창건 이후 1330년경에 무기(無奇)스님이 머물면서 천태종의 교풍을 크게 떨쳤으며, 충혜왕 1년(1331)에는 부정축재로 거금을 모은 권신 채홍철(蔡洪哲)이 선방(禪房)을 증축하여 선승(禪僧)들의 수도를 적극 후원하였다.
고려말인 1352년에는 금강산 법기도장(法紀道場)을 참배하고 남하한 인도승 지공(指空)이 이 절에 머물렀다. 지공선사의 법맥은 무학으로 이어지며 그 두분의 부도는 회암사지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누르고 유학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퇴락하였으나 인종 1년(1545)에 왕실의 도움으로 중건되고 이듬해에는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경국사 사적기』에는 문정왕후의 중창 이후『부처님의 가호로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청암사를 경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현종 10년(1669)에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복원하면서 부근의 약사사를 봉국사로 중창, 개칭하고, 흥천사와 함께 정릉의 원찰(願刹)로 삼을 때 이 청암사도 원찰로 지정되어 경국사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국사는 숙종 때 연화 승성스님, 영조 때 난암 의눌스님이 중수(重修)하였으며, 철종 때는 예봉 평신스님이 법당을 다시 세우고 고종 1년(1864)에는 고종의 등극을 축하하는 재를 열기도 하였다. 고종 5년(1868)에는 칠성각과 산신각을 새로 짓고 호국대법회를 열었는데 이 때 왕실에서 범종을 보시(布施)하였다.
1921년부터는 단청(丹靑)과 탱화 조성에 일가를 이루었던 보경(寶慶:1890~1979)스님이 60년간 주지로 머물면서 절을 새롭게 변모시켜 나갔다. 보경스님은 교학과 선지(禪智)를 두루 익히고 계율에도 철저하여 승가의 귀감이 되었고,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서 민족의 정기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민족문화의 전승에 있다고 생각하여 전통 불상조각과 불화화법을 익혀 대가를 이루었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보경스님의 인격과 태도에 감화되어 몇 차례나 찾아왔고, 1953년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였을 때도 이 절을 찾았다. 그 후 지관(智冠)스님이 1979년에 주지를 맡아 활발한 포교활동과 절의 내실을 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은 최근까지도 많은 불사를 일으켜 현대식 건물의 모습이 적지 않으나 이는 전면의 모습이다.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 뒤로 올라가 보면 고즈녁한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비로소 옛 사찰의 모습도 나타난다.
전통적 사찰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면에는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우측으로 범종각이 있다. 극락보전 좌측으로 명부전이 호위하고 있으며 명부전과 극락보전 사이로 나 있는 작은 길을 오르면 산신각과 영산전, 천태성전이 있다.
다양한 당우들도 중요하지만 풍수를 익히고 배우는 학인으로 살피고자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찰이 자리를 잡은 입지일 것이다 따라서 산신각 뒤로 올라가 살펴보니 뒤가 마치 우산으로 둘러싼 듯, 나성이 펼쳐져 있어 바람을 차단하고 있다. 나성처럼 길게 이어진 산릉(山陵)이 뒤를 애워싸고 있으며 작은 지각 몇가지가 뻗어 나와 산릉을 지탱하고 있다. 이 작은 지각 끝에는 각각의 당우가 지어져 기맥을 받고 있으니 천태성전과 산신각이 매우 좋은 자리다.
국세를 살피면 나성처럼 두른 주능선에서 갈라진 두개의 지각이 눈을 잡는다. 사찰을 들어설 때 입구에서 본 우백호는 마치 활처럼 휘어져 절 입구까지 내려온 다음 한줄기 작은 지각을 뻗어 갈고리처럼 안으로 굽어져 입구를 막고 있다. 입구에서 볼 때 오른쪽인 좌청룡은 나성의 끝부분에서 휘어진 지각으로 뻗어 활처럼 굽어 사찰을 감싸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좌선 방향으로 계곡이 있어 물이 흐르므로 작은 지각들이 물 쪽으로 뻗어 보호사(保護砂)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보호사로 인해 물소리가 차단되고 청룡이 물에 파이거나 훼손되고 있지 않으며 물이 크게 원을 그리며 흘러나가고 있다. 좌청룡은 만곡처럼 굽어 우백호를 지나친 곳까지 뻗어 나와 마치 두 팔이 아이를 감싸듯 교쇄를 이루고 있다. 참으로 귀한 양택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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