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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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강화 참성단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6-02-08 조회수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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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국의 제천신화를 보여주는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 흥왕리 산 42-2번지 마리산(摩利山) 꼭대기에 있는 제단(祭壇). 마리산 제천단이라고도 한다. 높이 5m. 상고시대에 단군께서 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이 단은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데, 《수산집(修山集)》<동사(東史)>에는 <제천단은 강화도 마리산에 있으니 단군이 혈구(穴口)의 바다와 마리산 언덕에 성을 둘러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이라 이름하였다. …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제단은 반드시 수중산(水中山)에 만드는 것이요,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것은 하늘과 땅의 뜻을 세운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문헌비고》에는 1639년과 1700년에 각각 참성단을 개수(改修)하여 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에 <… 마리가 으뜸가는 명산이라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이른바 참성단이라. … >라는 기록이 있다.

상단 네모의 길이는 사방 2m, 기단 원형의 지름은 4.5m이다. 자연의 산석(山石)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돌과 돌 사이에 흙이나 회를 바르지 않고 쌓았다. 상단 동쪽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참성단이 네모와 원으로 만들어진 것은 천(天)과 지(地)의 상징이며 모든 조화가 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상에서 나왔다. 여러 번 고쳐 쌓았기 때문에 그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전국체전 때에는 성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리고, 특히 개천절에는 제천행사가 거행된다. 사적 제136호이다.

강화하면 마리산과 전등사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특히 마리산 정상 부근에는 참성단이 있다. 기도원에서 400여미터를 올라가면 쉬기 좋은 공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온 길과 만난다. 이곳에 작은 공간이 있어 쉴 수 있다. 설명에는 이곳에서 당렬한 기(氣)가 나온다고 적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잉혈(孕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 엘로드를 이용해 측정했는 모양인데 모르기는 해도 잉혈의 혈심에서 측정한 모양이다.

이곳을 출발해 정상까지는 약 700미터가 조금 넘는다. 약 300여미터를 올라가면 다시 평평한 공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둥근 산봉우리가 하나 나오는데 길옆에서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 정상이다. 길에서 떨어져 있어 일반 등산객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인데 겸혈(鉗穴)이다. 입수와 당판, 전순과 지각에 두루두루 바위가 받치고 있어 상당히 급수가 높은 혈처이다.

이곳에서 약 100미터는 깎아지른 계단이라 깔딱고개라 할 수 있는 데 이를 거쳐 다시 한번 깔딱고개를 올라 조금가면 다시 조금 평평한 곳이 나오고 안내간판이 나온다. 기가 강하다는 곳이다. 엘로드로 측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혈판은 볼 수 없으니 음택지는 아니다. 다시 말해 기맥은 강하나 기가 뭉친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 200미터 후가 참성단이다. 고개를 올라 보면 참성단이 확연하게 보이지만 사방이 철망으로 둘러쳐져 출입이 통제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가치가 있고 신성한 곳이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견 직접 들어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참성단은 1년에 몇 번정도 개방을 하는데 개천절과 신정 무렵, 그리고 전국채전 성화 채광을 할 때가 개방되는 날이다.

마니산 상봉(468m)에 자리잡고 있는 참성단은 단군 기원전 51년(BC2282)에 단군 왕검께서 민족만대의 영화와 발전을 위하여 춘추로 하늘에 제사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다. 기초는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쌓고 단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로 쌓았으며 이곳 마니산은 백두산 천지와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한다 둥근단의 지금은 8.7m이며, 네모난 단은 6.6m의 정방형 단이다.

마니산(摩尼山 468m)의 참성단(塹城壇)은 대한민국내의 유일한 단군 유적이다. 그 사실의 실재 여부를 떠나 적어도 1,000년 가까이 마니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우리 의식 속에 들어와 있다.

고려 원종 11년 (1270)에 참성단을 보수한 기록이 있으며, 인조 17년(1717) 강화유수 최석항이 전등사 승 신묵에게 명하여 참성단을 수축케한 금석문이 전한다. 해마다 음력 10월 3일에 천제암궁지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또한 전국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곳에서 7선녀에 의해 성화가 채화되어 대회장을 밝히고 있다.

강화 마니산(摩尼山)의 참성단(塹城壇)은 국조 단제(檀帝)께서 직접 명하여 제단을 쌓게 하시고 손수 제천보본(祭天報本)의 전통윤리를 수범(垂範)하신 곳으로 우리 민족과 한울과의 연결고리 구실을 해주던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원리를 간직한 제천단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 유적으로 그 가치성은 무한하다.

굳이 풍수를 논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풍수적으로 논한다면 마니산의 정상을 피해 제2봉에 새웠다는 것이 바람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한라산과 백두산의 중심점을 알아내었는지 감탄이 나온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 중에 신인(神人)이 있었던 모양이다.

참성단은 정확하게 건좌손향(乾坐巽向)이다. 이 형태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한 구조이다. 즉 건향은 바로 하늘의 기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풍수를 배우는 입장에서 그같은 사실을 주장하지만 역사학자들이나 다른 의미를 주장한다면 반박할 수 없다. 단지 풍수에서 건(乾)은 하늘을 의미하며 하늘의 기운이 미치는 곳으로 보기 때문에 참성단이 풍수와 관련이 없다 해도 하늘의 기운이 미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 혈인가 아닌가 하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돌혈이니, 유혈이니 주장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본 결과 돌혈은 아니다. 돌혈이라면 사유에 지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각은 하나 뿐이다. 즉 애초의 능선은 지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지각으로 볼 수 없고 현재 계단으로 이어지는 지각만 인정 된다. 간혹 바위도 지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적용한다 해도 흥왕리 방향으로 하나밖에 인정할 수 없으므로 돌혈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각이 두개라고 해서 겸혈은 아니다. 겸혈의 조건은 한 지각이 짧아 앞이 오무려져야 하는데 그같은 혈상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굳이 혈이라고 한다면 유혈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운의 문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한사람은 하늘에서 맑은 기운이 나온다고 했다. 몇 년간 꾸준하게 기공을 수련한 사람인데 수십년간 기공을 수련한 본인은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인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단지 땅에서 느껴지는 청기(淸氣)는 느낄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기운을 느낄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도 소용 없었다. 수련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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