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의 아픔이 스며있는 광성보
사적 227호로 지정된 광성보는 덕진진과 강화대교 사이에 있다. 건너편은 덕포진으로 덕포진에 자리한 손돌의 묘에서 정면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번지에 자리한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되었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되었다. 영조 21년(1745)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란 현판을 달았다.
광성보 내에는 신미양요시 순국한 순무천총 어재연, 동생 어재순의 쌍충비와 무명용사들의 합장묘인 신미순의 총 그리고 1977년 전적지를 보수하고 세운 강화 전적지 보수 정화비 등이 있다.
광성보는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해안에 소재하고 있으며 강화해협과 김포와 마주보고 있다. 고려시대의 성을 1618년(조선 광해군 10년)에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다.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보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1745년으로 이때 안해루란 성문을 세웠다.
무명용사의 무덤인 신미순의총은 광성보 안에 있는 쌍충비각에서 좀 떨어진 아래 등성이에 있다. 1871년 신미양요때 용감하게 적과 싸우다 순국한 59인의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을 7개의 분묘에 합장한 것이다. 풍수적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 언뜻 보아서는 마치 골짜기 쪽으로 묘를 쓴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 옆으로 두개의 지각이 환포하고 있으며 등 뒤로 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귀성도 양 옆으로 두개의 지각으로 환포하듯 보이는데 약해 보이기는 해도 후탱귀(後撑鬼)가 정확하다. 이처럼 주개의 지각이 환포하고 후탱귀가 있다면 와혈이다.
손돌목 돈대는 풍수적으로 돌혈에 해당한다. 사유에 지각이 뻗어 있고 오똑한 모양, 마치 공이 허공에 뜬 모양이 돌혈이다. 돈대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이 돈대의 위용과 아름다움, 그리고 풍수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이 돈대의 왕성한 지기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용두돈대는 풍수적으로 많은 배움을 준다. 사두혈(蛇豆穴) 모양으로 길게 뻗어나간 기맥 끝단에 자리한 이 돈대의 모양은 사두형이지만 잠두혈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들어가는 방향에서 왼쪽에 바위로 이루어진 지맥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모습이 보이는 데 이는 바닷가 혈처의 보룡(保龍)이다. 혹자는 이 용두돈대의 모양이 사두형이나 막상 혈판의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단학 수련자들이라면 혈심이 기념비부근에 있음을 알 것이다. 특히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잘 살피기 어렵지만 사유에 지각이 뻗어 있다. 단지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면 우측 뒤쪽으로 나와 있어야 하는 지각이 잘 보이지 않아 지각이 3개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맥을 측정해 보면 우측 바위쪽으로 기맥이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용두돈대는 정상부가 정리되고 약간 깎인 돌혈(突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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