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신사지 석탑과 덕주사 마애불
보물 제94호 빈신사지 석탑. 정확한 위치는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다. 탑은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높이 4.5m. 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를 원각(圓刻)하여 배치한 특수형식의 석탑이다. 특수양식의 면을 대표하는 구조로서, 네 귀에 하나씩 모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하여 두발(頭髮)로 갑석을 받도록 하고 중심부에는 지권인(智拳印)을 결한 비로자나불좌상(毘盧舍那佛坐像) 1구를 안치하였다. 사람의 손길을 타서 비로자나불의 코가 많이 훼철되었다. 이 석탑은 화엄사4사자3층석탑을 모방하였지만 규모가 축소되고 조형은 위축되었으며 각 부의 조각수법 또한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층기단부 면석에는 해서(楷書)로 10행 79자의 조탑연기(造塔緣記)가 음각되어 있는데, 명문에 의하면 본래는 9층이었으며 1022년에 조성되었다. 풍수적으로 그다지 찾아볼 것이 없다..
덕주사는 월악산(月岳山)의 남쪽 능선 아래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587년 창건으로 전하나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 일행과 함께 이곳에 들러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계곡이름을 덕주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 앞에 있었는데, 1951년에 국군 제8사단이 작전상의 이유로 소각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 중건한 것으로 마애불에서 1.7㎞ 정도 떨어져 있으며 당우(堂宇)는 최근 지은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관음전과 약사전이 있으며 근일에 산신각을 건립하였다.
현재의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으며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다.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있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또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游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 1-1번지. 덕주사는 물과 산 사이의 긴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으로 온통 높은 산이지만 천옥의 모양을 지닌 것은 아니다. 가장 위쪽에 부도밭이 자리하고 요사채가 이어진다. 다른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계곡을 따라 죽 늘어선 형태의 배치인지라 형식이 파격적이다. 다른 절과는 그 형태가 다른 배치다. 즉, 산 옆을 따라 길게 늘어서 배치된 형태인지라 기존 사찰들과는 가람 배치가 다르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9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제천시 한수면 역리(驛里) 덕상(德尙)골의 전(傳) 정금사(淨金寺)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1983년 4월 현위치로 이전 봉안되었다. 현 덕주사에 단칸 규모의 보호각내에 있다. 고려후기의 소작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 앞에는 작은 비각이 있어 비를 봉안하고 있다. 이름하여 대불정능엄신주비를 모신비각이다. 대불정능엄신주비(大佛頂楞嚴神呪碑)는 영사여래입상과 함께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제천시 한수면 역리 정금사 터와 송계리 월광사지 입구 논둑에서 옮겨온 이 고려시대의 석물이다.
경내의 가장 아래쪽에는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기맥을 타고 흘러내려온 능선의 끝에 매어 달린 두개의 갈라진 바의틈에 모셔져 있다. 음석(陰石)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바위를 기둥과 벽으로 삼아 지붕을 만들고 산신도를 골로 세겨 모신 이 산신각은 기맥의 흐름이 왕성하여 기도처로서 영험하다 하겠다.
월악산은 음기가 넘치는 산이다. 특히 곳곳에 치마바위라 일컬어지는 난의사가 적지 않아 음행이 일기 쉬운 곳이다. 그래서 소문에 전하기를 충지역과 제천지역에 여자의 음행이 날 것을 염려하여 신이 산 정상에 바위를 내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멀리서 보면 유두의 모습과 흡사하다.
음기가 넘치는 산의 특성상 덕주사의 경내에도 음행을 막기위한 노력을 한 흔적이 보인다. 즉 관음전 앞으로 올라가는 터에 네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미 모두 부서지고 부러져 그 모습이 완연하지는 않다. 그 네 개의 기둥은 남근석이다. 즉 남근석을 깎아 세움으로서 음행을 막으려 한 노력이다.
덕주사는 계곡 깊숙한 곳에 세워져 있고 계곡을 따라 건립된 것으로 보아 비보사찰의 의미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입지조건으로 보아서 기도처라고 하기 보다는 비보사찰이며 산신각과 대웅보전의 기맥과 형상으로 보면 도처로서의 명성도 가능하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보물406호 마애불상은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1-1번지에 있다.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구전으로 587년(진평왕 9)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그것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 일행과 이곳에 들렀을 때 절을 세워 절이름을 덕주사라 하고, 골짜기 이름을 덕주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덕주사 마애불은 월악산 남쪽기슭의 덕주사 법당자리 동편의 큰암벽 남쪽에 정면직립으로 조각된 불상으로 1964년 보물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제천 송계리 마애불과 충주 미륵리 석불은 서로 마주 보도록 조성되어 있다.
이처럼 큰 마애(磨崖)는 기맥의 증거다. 물론 기맥이 있다고 모두 명당은 아니다. 역시 덕주사 마애불도 명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기맥의 왕성함은 부정할 수 없다. 살펴보면 마애불 뒤편에는 아무런 당판도 없다. 어찌 보면 평범한 바위일 뿐이다. 그러나 바위는 판석으로 하늘을 향해 높이 섰으니 화표(華表)라 하겠다.
화표는 명당이 아니지만 명당을 알리는 하나의 표식이다. 예로부터 ‘천길화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표가 있는 곳에는 강력한 기운을 지닌 명당이 있다 하였으니 지표로 삼아 공부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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