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이상설생가와 안타까운 묘
지방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된 이상설 생가가 자리한 곳은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다. 지극히 평범한 형태이며 이상설(1870∼1917)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조선 말기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순오(舜五), 호는 부재(溥齋)이다. 아버지는 행우(行雨)이나, 1876년 용우(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충청북도 진천(鎭川) 출신. 이범세(李範世)·여규형(呂圭亨)·이시영(李始榮)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고 H.B. 헐버트와도 친교를 맺어 영어·프랑스어를 익혔다.
생가 초가집을 탱자나무울타리가 둘러싸고 있다. 정면이 본채다. 헛간채를 마주보고 있다. 정면의 본채를 바라보니 일자형으로 왼쪽이 부엌이고, 오른쪽에 좀 들어간 봉당 위에 신발을 얹어 놓기도 하고 계단 역할도 하는 신발대가 보인다. 집의 크기와 배치를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다. 신발대를 딛고 반쯤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한 칸 짜리 안방이 나오는데 대여섯명이 들어서면 답답할 정도다.
뒤를 보면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이 지붕보다 조금 높다. 비록 산자락의 정확한 지점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지만 배산임수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양 옆으로 산이 있어 과거에는 헛간채 뒤에 작은 계곡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울타리다. 울타리와 담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양택에서 담은 음택의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담의 기준은 일정한 높이와 일정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나무로 엮거나 바람이 새어드는 나무 울타리나 철망은 담과 다르다. 즉, 담의 구조를 형성하지 못한다.
지극히 평번한 생가를 지나 옆을 보면 사당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높은 건물이나 지대는 생가에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생가보다 큰 건물의 위치가 술건해(戌乾亥)방향이면 더욱 좋다. 이는 내 자리에서 볼때 북서풍의 바람이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사당 옆에는 선생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선생은 서거하실 때 화장을 해 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묘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선생의 묘역은 좋지 않다. 풍수적으로 명당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다. 선생의 업적과 민족을 위한 노력과 희생을 생각하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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