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에도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라는 이름은 귀에 익은 편이다. 워낙 유명한 고찰이기 때문인데 대부분 경남 하동의 천년 고찰 쌍계사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쌍계사라는 이름이 지극히 대중적인 이름처럼 논산에도 쌍계사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논산 쌍계사 대웅전은 1963년 9월 2일 보물 제 408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와 하동 쌍계사가 더 크다는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3번지에 자리한 쌍계사는 정말 아름답고 뛰어난 풍수적 입지를 가지고 있다. 꼭 불자가 아니라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물론 대단히 큰 사찰은 아니지만 절 입구의 호수 주변에 화려한 꽃은 4월 중순에서 5월 초에 절정이다. 이 꽃은 벗나무의 일종인데 흔히 큰꽃잎벚나무꽃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겹사쿠라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는 틀린 말이고 어울리지도 않는 표현이며 일본말과 한국말이 뒤섞인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말이다. 겹벚나무라고 불러야 하지만 나무가 두겹이 아니고 꽃이 크고 꽃잎이 겹으로 피니 큰꽃잎벚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혹은 왕꽃잎벚나무도 어울린다.
꽃이 국화꽃처럼 크고 색깔도 진항 홍색과 흰색이다. 이 꽃을 감상하고 더불어 쌍계사를 보고자 한다면 그러나 계절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고 일기와 온도에 차이가 있으므로 그 중간인 4월 말을 권한다.
쌍계사로 가는 길은 아주 쉽다. 논산의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부근에 성삼문의 묘소도 있다. 호남고속도로 논산 나들목으로 출입하는 것이 좋다. 논산 나들목은 논산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논산에서 이어지는 민자고속도로가 논산분기점에서 만나기 때문에 비교적 교통이 좋은 곳이다.
논산 나들목에서 가야곡면으로 가는데 나들목에서 불과 3킬로미터 정도다. 가야곡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서 양촌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가는 차로가 602번 도로다. 이 도로를 타고 가야곡 면소재지에서 약 8키로 정도를 가면 양촌면과 가야곡면 경계를 넘어서며 석서리에 있는 쌍계 초등학교를 만난다. 바로 이 초등학교 가기 바로 앞쪽에 쌍계사를 알리는 간판이 있다. 이 간판을 보며 골짜기 안으로 2키로 정도 가면 쌍계사가 나타난다. 쌍계사 바로 앞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아주 편하다.
2005년 4월 29일 현재 쌍계사는 일주문이 없다. 호수 끝에 돌출된 지각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돌로 쌓은 성벽 모양의 담이 둘러쳐져 있고 중앙에 출입문을 겸하는 2층의 고루(鼓樓)가 있다. 형식이 2층의 고루인데 주변의 모양과 당우의 배치 형태로 보아 만세루의 역할을 겸하는 것 같다.
쌍계사는 고색창연한 맛이 떨어지지만 고졸한 맛은 있다. 대찰로서의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전설이 깃든 역사성이 돋보이는 절이고, 중창불사가 일어나 한동안 다듬고 가꾸어질 여지가 무궁한 절이다. 아직도 중창 불사가 계속되고 있으나 어지러울 정도로 난잡하지는 않다. 절에는 입구의 부도전과 중심인 대웅전 그리고 명부전이 돋보인다. 역사성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봉황루나 관음상이나 요사채 등 다른 건축물들은 새 맛이 역력하다.
논산 쌍계사는 유명한 것이 세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대웅전의 꽃창살문이다. 정면 다섯 칸에 달린 여닫이문들을 보면 모란, 연꽃, 국화 무늬 등 서로 다른 꽃문양살로 만들어져 있다. 본디 채색되었던 것이 세월과 함께 퇴색되어 더욱 고졸한 멋을 풍긴다. 이 절에 깃든 여러 가지 전설 중에 이들 꽃살문 문양에 도력(道力)이 가미되어 법당 안쪽으로 빛이 잘 투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절이 지닌 여러 가지 전설을 꾸며주기라도 하듯 특별히 숨어 있는 도깨비 4마리다. 대웅전 현판 뒤 윗부분에 좌우로 두 마리 도깨비가 숨어 있다. 보기에 왼쪽은 붉은 얼굴이고 오른쪽은 푸른 얼굴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봉황루로 가면 새로이 단장한 단청 속에 또 두 마리 도깨비가 있다.
세 번째는 명부전에 들어 있는 지장보살을 위시한 시왕과 장군상들이 모두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부전에 들어서면 시왕을 비롯한 모든 장군상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다른 사찰의 근엄함과는 너무 다르다.
고루를 지나 들어서 보면 정면에 기봉한 목형산 모양의 주봉이 보이고 그 앞에 쌍계사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우측으로 명부전과 2채의 당우가 나란히 대웅전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요사채는 대웅전 정면의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418m)에 있는 이 대웅전은 조선 영조 14년(1738)에 재중건 되었는데 기둥과 대들보들은 굵은 재목을 사용했고, 규모도 상당히 큰편에 속한다. 정면 5칸은 6개의 기둥을 같은 간격으로 세우고, 각칸마다 두짝씩 문을 달았다. 이들 문짝은 섬세하고, 정교한 꽃새김을 한 꽃살문이다. 문살에 조각된 꽃무늬는 국화, 작약, 목단, 무궁화 등을 화려하게 조각했고, 꽃과 문살에도 채색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민흘림 있는 기둥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짜서 돌리고 그 위에 외사출목 내오출목의 다포식 공포를 배열하였는데 우리나라 불전건물로서는 출목수가 많은 공포의 사례다. 보머리에는 사자와 연화 등을 조각하여 건물외관에 장식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고 내부 살미 첨차는 온통 초각 형식을 이루고 있어 조선후기 건축의 특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건물내부에는 3불을 봉안하였는데 불상마다 상부에는 장려한 닫집을 달았으며 닫집의 섬세한 조각과 장식은 장엄한 느낌을 준다.
쌍계사는 본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옛이름으로는 백암이라고도 했다. 충청과 전라를 잇는 지점에 규모가 큰 대찰로 건립되었으나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었다. 그 뒤 여말의 대문장가 행촌 이암선생이 중건을 발원하였고 목은 이색이 녹기를 쓸 정도의 대찰로 대웅전이 중건되었으나 그 후 병화로 여러차례 불타진후 숙종 42년(1716)에 승려 자영이 2층으로 대웅전을 또 중창하였고 다시 21년후인 영조 12년(1736) 11월 화재로 전소 되었다가 2년 뒤인 영조 14년(1738) 6월에 상량하고 지금의 대웅전이 다시 건립되었다.
특히 대웅전에 세워진 기둥중에는 싸리나무로 이루어진 것이 있다. 혹자는 칡덩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싸리나무가 기둥이 되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자라야 하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특히 이 싸리나무 기둥을 안아보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고통이 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의 참배 대상이 된다.
풍수로 보아 쌍계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쌍계사라는 이름 그대로 사찰은 두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중간에 있다. 말이 애매하기는 하나 주산인 작봉산에서 여러개의 산줄기가 정북을 향해 뻗어내려 오고 있는 중에 쌍계사는 소쿠리 모양의 비교적 오목하고 깊은 계곡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주산이 대웅전까지 이르러 강력한 기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산은 조산인 작봉산과 남당산 사이의 금형산에서 2키로를 달려와 마지막으로 크게 응기하여 힘을 모은 다음 낙맥으로 떨어져 혈을 결지하였으며 대웅전은 이 결지된 혈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쌍계산의 주봉은 화암사가 자리한 불명산 시루봉에서 갈라져 나온다. 전주에서 동북방 약37Km지점에 멀지도 않고 높지도 않으면서 심산유곡을 방불케 하는 불명산이 완주군 경천면과 운주면 접경지에 솟아있다.
동북쪽 금당리 용계원계곡을 사이에 둔 천둥산과 같은 맥으로 동남쪽 가나안 복민학교의 호렙산과 선녀봉, 그리고 서북쪽 능가산으로 둘러싸인 나즈막한 산이 불명산이다. 불명산 주봉인 시루봉을 정점으로 장선리재와 용계재 사이에 반달형의 여러개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울창한 숲 속에 싸인 남쪽 산기슭에 천년고찰 화암사를 안고 있다.
이 불명산의 기맥 한줄기가 시루봉에서 시작하여 남당산을 만들고 쌍계사 뒤쪽의 작봉산을 만들어낸다. 엄격하게 말하면 쌍계사에 이른 용맥은 작봉산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고 시루봉에서 발원한 것이다.
쌍계라는 이름은 두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 즉 합수처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합수의 중앙 높은 곳은 풍수적으로 아주 길한 곳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많은 비가와도 피해를 입지 않는 곳이며 모든 살충이 비껴 내려가는 곳이 바로 이런 곳으로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과도 비슷한 위치이다.
두개의 계곡은 악간의 차이가 있는데 대웅전을 혈장으로 보아 우선 방향은 계곡 물이 흐르는 방향이 조금 넓게 퍼지면서 당판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골짜기 방향으로 불상을 모시고 있다. 즉 풍수적으로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계곡의 살기를 막아보지는 의도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좌선 방향 골짜기는 당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흐르는 계곡이다. 따라서 대웅전을 제외한 당우들이 이곳 방향에 지어져 있다.
쌍계사는 매우 좋은 지형에 자리하고 있으며 낙맥상의 혈지에 대웅전을 세웠으니 기도처와 학문 수양의 장소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아주 뛰어난 풍수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만약 찾아보고 싶다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말을 권한다.
여담이라면 대웅전 동쪽 측면의 세 번째 기둥은 정말 특별하다. 500년 묵었다고 했던가? 1000년이라고 했던가? 이 기둥은 칡덩굴기둥이라는데 아름드리로 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다른 기둥들과 크기에 있어 똑같다. 혹자는 싸리나무라고 하는데 아무튼 이런 싸리나무든 칡이든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정말로 이런 칡덩굴이 있으려나 싶게 굵다. 칡이라고 해도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잇는 단단함이 놀랍고 믿어지지 않는다.
굵기에서만이 아니라 윤달에 이 기둥을 안고 돌면 병을 오래 앓지 않고 저승에 간다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나이 많으신 방문객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순서를 기다린다. 혹자는 이 기둥을 안아보면 죽을 때 고통 없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신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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