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사 마애불 불암산에는 천보사가 2곳이다. 그러나 보통 천보사 하면 불암산 불암사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사찰을 말한다. 천보사(天寶寺)는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104번지 불암산에 위치한 조계종 사찰이다. 불암산(佛岩山)은 필암산(筆岩山) 또는 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하늘의 보물이라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불암산에는 많은 사찰이 있는데 한결같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달리 천보산이라고 하는데 천보사가 있고 달리 불암산이라 부르니 불암사가 있다. 그리고 서방정토를 의미하는 내원암이 있고 바위가 아름다운 산을 말해주듯 감로수 같은 샘이 솟는 석천암이 자리하고 있다. 불암(不岩)은 달리 부처바위란 뜻이고 천보(天寶)는 하늘의 보물이니 부처의 지고지순한 덕을 이르는 말이다. 불암산의 최고봉은 507m로 그 아래 불암사가 있고 정상 바위 밑에는 샘이 맑아 이름을 얻은 석천암이 있다. 불암산과 석천암, 천보사는 불암산의 사찰로 대단히 비등한 존재이나 그동안 불암사에 비교해 천보사는 가려져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공통점이라면 불암산의 사찰에서 이 세 곳의 사찰은 모두 마애불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불자들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불암사를 생각하고 불암산으로 가지만 불암사에 오르는 초입에서 길이 갈라져 올라가는 천보사는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덕릉고개 남쪽에 높이 420m의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데 명왕봉이라 부르는 영험한 산으로 불암산의 작은 봉우리며 여기에서 조금 내려간 8부 능선정도에 천보사가 자리 잡고 있다. 불암산은 이름 자체가 부처의 보궁이라는 의미다. 불암산이라는 이름 자체를 보면 산 전체가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으며 곳곳에 사찰이 들어서 불국토를 만들고 있다. 산의 규모를 생각하면 경주의 남산과 비교할 바는 아니나 그와 유사한 불국토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보사가 자리하고 있는 명왕봉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치 천길처럼 보이는 이 바위는 모가 나지 않아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살기가 없다. 멀리에서 보아도 이 바위가 매우 영험하고 살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천연 암반을 잘 살펴보면 중앙에 180m에 이르는 비로자나불, 좌측에는 60m의 높이를 지닌 노사나불, 우측에 80m의 키를 지닌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이는 사람의 손이 새긴 것이 아니고 바위가 마애불과 같이 생겼다는 것이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눈여겨 보면 환하게 보인다. 바위 모양을 자연이 새긴 삼존불인 샘이다. 그래서 천보사를 천연적멸보궁이라고도 부른다. 천보사에 오르는 길은 불암사와 같다. 서울과 남양주, 혹은 구리에서 접근하기 편하다. 구리와 남양주에서는 역시 담터 삼거리까지 가면 곧 찾을 수 있다. 명왕봉 정상 8부 능선 정도에 있기 때문에 차로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다. 대부분 높은 곳에 지어진 사찰은 기도처로서 그 가치가 있다. 산 아래 곳곳의 넓은 터에 차를 세우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것도 천보사를 오르는 즐거움이다. 산 아래까지 천보사 셔틀이 왕복한다. 산책을 겸한여 옛길인 오솔길을 타고 오르다보면 절의 표문인 작은 일주문이 나온다. 지금은 진입로가 바뀌어 일주문을 마치 일부러 외딴 곳에 숨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절 입구의 마지막 굽이에서 우측 아래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앙증맞은 일주문을 볼 수 있으나 지금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천보사의 창건 년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조선 문종실록에 의정부에서 왕실의 사냥터 폐지를 건의하는 상소문 중에 천보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에 천보사가 존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대웅전 뒤 천연암벽에는 높이 12m에 이르는 석조마애좌불상이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년대를 고려 중후기로 잡고 있으므로 절의 역사를 고려중후기로 볼 수 있다. 마애불의 상호는 둥글고 입체감이 있으며 눈매가 길고 부드럽다. 귀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코는 크고 입가에는 옅게 웃음을 머금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원만하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근엄한 느낌을 준다. 소발(素髮)의 머리위에는 큼직하고도 둥근 육계가 솟아 있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옷은 편견(偏見)으로서 선각(線刻)처리된 옷주름은 가슴부터 발목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양쪽 발은 반가부좌 모양으로 안정감을 주며 발가락의 표현도 매우 자연스럽다. 손은 오른손을 밑으로 내려 손등이 보이고 왼손은 오른발위에 손바닥이 보이도록 들고 있는 항마촉지인 설법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전체적으로 고려마애불의 특징을 지녔다. 그러나 언뜻 보아서는 최근에 새긴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든다. 애석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애불 아래 연화대좌를 새기려고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최근 기계를 이용해 바위를 깎아 대좌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옛 모습을 상실하고 있다. 이 부자연스러움이 마애불의 역사성을 깎아먹고 있는 느낌이다. 마애불 위로 자세히 바라보면 선각으로 이루어진 마애불이 있다. 자연적으로 돗음된 바위를 몸으로 삼아 일부만 새겨져 있는데 역시 오래되지 않는 듯 보이나 그 역사성은 알 수 없다. 삼도가 뚜렷하다. 마애불 앞에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5층 석탑이 있다. 그 옆으로는 미륵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나 최근에 조성된 불사로 모셔진 듯하다. 키자 작은 5층 석탑은 바위위에 올려 기단은 만들지 않았다. 연대를 측정할 수 없고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듯 보이지만 최소한도 조선시대 정도로는 올라가는 탑으로 생각된다. 이외에 절의 역사를 증명할 만한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천보사는 고려시대 조성된 마애불이 있으므로 그 중심을 이루는 사찰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은 대규모 불사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과거에는 조용한 암자로 기도도량이 아니었나 보여진다. 2006년 천보사의 주지스님인 원종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도 천보사는 조선시대 혁신을 일으키고 거사를 일으켰던 박원종 대감의 후손들인 순천박씨의 원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 원찰은 묘역과 가까운 법인데 박원종 대감의 묘역이 덕소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제법 먼 곳이다. 이 당시는 원효종계열의 사찰이었으며 1996년 범어사 스님들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조계종사찰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산은 불암산 명왕봉이다. 천보사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아득한 바위 위가 명왕봉이다. 명왕봉 거대 암반 마애불 바로 아래에는 대웅전이 놓였다. 대웅전은 특이하게도 뒷벽을 밖으로 한 칸 덧달아내 이곳을 감실삼아 108부처님을 모셨다. 그러나 대웅전과 마애불은 단차가 많고 일정거리 떨어져 있다. 대웅전과 마애불 구간을 돌계단으로 놓아 편리성을 도모하였고 대웅전의 주불처럼 내려다 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양식 건물인데 지붕은 맞배이고 동기와를 얹었다. 특이한 것은 용마루 상부이다. 용마루 중앙에는 코끼리상을 올려놓았는데 정면에서 보아 왼쪽의 코끼리는 꽃을 한송이 말아 쥐고 있는 모습이다. 대웅전은 반야용선이니 코끼리가 타고 있는 셈이다. 대웅전 뒤의 바위는 명왕봉의 8부 능선에서 해당하며 정상까지 이어진다. 마치 커텐을 치듯 바위가 이루어져 있다. 이곳을 잘 보면 마치 코끼리 같은 바위가 있고 뒤쪽으로는 천연적으로 바위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대웅전 용마루 위의 거북은 명왕봉에 새겨진 천연 코끼리상을 옮겨 놓은 듯하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지고 약함을 든 보살이 같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방향의 좌측 언덕에는 봉명당이라는 3칸짜리 작은 건물이 있다. 봉황의 울음소리를 뜻하는 편액 이름처럼 이곳은 스님들이 불자들과 차를 마시며 불법을 이야기 하는 곳으로 쓰인다고 한다. 봉명당 바로 옆에는 천연암반에 그리 깊지 않은 석굴을 파서 용화전을 만들었다. 용화전에는 도공의 노력이 돗보이는 마애용왕상이 있다. 보주를 받쳐 든 용왕이 거북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몇 마리의 거북이들이 이를 함께 수행하는 모습을 바위에 새겼다. 그 앞에는 맑은 석천(石泉)이 있어서 용궁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물 옆에는 큰 바위에 새겨진 거북이 한 마리가 더 있다. 등에 3마리의 새끼를 태운 모습이 앙증스럽다. 비가 와도 배례가 가능하도록 인공암석을 만들어 공간을 확보했다. 보통 용화전에는 미륵부처님을 모신다. 미륵부처님은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용화세계를 이룩할 것이기 때문에 미륵전을 용화전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천보사의 용화굴은 미륵부처님이 아닌 용왕을 새긴 것이 독특하다. 그래서 이곳은 용화전이 아니고 용왕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곳이기는 하다. 용화전 에는 최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는 그 속에 불경을 넣고 돌리는 것으로 불경의 향기만 맡아도 설법을 듣는 것이나 같다고 하니 아마도 글을 읽지 못하거나 눈이 먼 소경을 위한 하나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불법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고승들의 예지가 느껴진다. 천보사에는 암반을 이용해 만들 불전이 또 하나 있다. 천보사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 뒤의 계단을 올라 돗을 새김의 마애불좌상이 있는 거대 암반 서쪽 끝에 있는 삼성보궁이다. 보통 삼성전은 아주 작은 건물로 대웅전 뒤 머리 공간에 세워지며 한국 토속신을 겸해 모신다. 천보사에서는 암반에 삼성불을 새겨 토굴로 꾸몄다. 이곳은 또 하나의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삼성보궁이라 하면 보통의 경우 산신과 독성, 그리고 칠성을 모신다. 다른 사찰과 특이한 것은 삼성보궁이 마애불이라는 사실만은 아니다. 중앙에는 동방세계를 관장하는 치성광여래를 새겼으며 좌우에 독성신과 산신을 새겼다. 독성은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은 나반존자를 일컫는데 대개는 천태산 소나무와 구름 등을 배경으로 한손에 죽장을 들고 한손에는 염주나 불로초를 들고 바위위에 정좌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천보사의 삼성보궁에 새겨진 독성은 매끄러운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배경은 새기지 않았으며 한 손에 죽장을 들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포대화상과 같은 느낌을 준다. 산신은 늘 그렇듯 여기 산신도 호랑이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그런데 습기가 있어서 인지 삼존상이 모두 축축하고 이끼가 끼어 있다. 보면 그다지 습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서 아마도 바위의 아주 작은 균열을 따라 빗물이나 샘이 흘렀을 것으로 보여진다. 대웅전 마당 아래에는 단차를 이용해 공양칸을 지었고 우측에는 축대위에 지장전이 있다. 워낙 자리가 협소하고 경사가 심해 건물이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기는 하나 암자의 터로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천보사는 풍수적으로 그다지 큰 터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불사를 일으켜 건물터를 넓히고 많은 당우를 지었다. 사찰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좋으나 조금은 옛모습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높기는 하지만 측면으로 명왕봉의 자락이 길게 뻗어나가고 좌측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판별이 어렵기는 하나 등으로 흐른 명왕봉은 주산으로서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여주고 단차가 있는 산자락은 넓은 터는 아니나 사찰터로 좁거나 아주 빈궁한 곳은 아니다. 또한 서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앞의 냇물은 비록 그 양이 적기는 하나 전형적인 명당수의 구실을 하고 있다. 앞쪽은 육산으로 이루어져 부드러운 기운을 지니고 있고 뒤로는 바위로 이루어져 강한 기맥을 형성하고 있다. 물과 바위가 나름대로의 조화를 이루었고 형상적으로 보아 천보사는 산자락 옆에 감싸여 약간 부실하다고는 해도 와우형 지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와 같은 구조를 누운 코끼리, 즉 백상형(白象形), 혹은 와상형(臥象形)지세로 풀이하기도 한다. 계곡은 깊으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길하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소란스러움을 불러오기도 하나 사찰은 늘 불경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뒤로 수십길의 바위가 있으니 기도처로는 어느곳에 비교하여도 빠지지 않는 곳이니 사찰 터로는 더할 수 없는 좋은 곳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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