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이 이름다운 흥룡사
포천군 이동면과 강원도 화천군에 걸쳐 펼쳐진 백운산(白雲山, 904m) 기슭의 위치한 백운계곡은 주변의 광덕산(廣德山, 1046m)과 박달봉(朴達峰, 799m)계곡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맑은 물과 바위가 한데 어울려 한없이 머물고 싶은 곳으로 예로부터 포천 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여름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유람객이 모이고 평소에도 수시로 산객(山客)들이 찾는 곳으로 경기지역의 명산이다. 이 계곡은 흔히 선유람으로 호칭되듯 신선이 유람하는 아름다운 곳이며, 더할 나위 없이 물이 아름다운 곳이다. 여름 가뭄에도 얼음처럼 차고 맑은 물이 흘러 삼복더위도 두렵지 않은 이 계곡은 예로부터 “구름 가운데 신선이 앉았다(雲中仙 座)"”라고 일컬을 만큼 아름다운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선유람의 초입에는 천년 고찰(古刹)인 흥룡사(興龍寺)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담을 끼고 흥룡사를 지나 계곡을 건너면 회백색의 넓은 암반 지대가 나오는데, 본격적으로 선유람에 해당하는 10여키로에 이르는 계곡이 절정이다. 선유람을 타고 계속해 들어가면 30m의 높이를 지닌 금광폭포(金光瀑布)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하얀 물거품을 토해내고 있다. 이곳에서 시작해 장장 6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백운계곡은 발길 닿는 곳마다 시원한 그늘과 구슬 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찾는 이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물이 너무도 맑아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무엇보다 청정지역이라 계곡에 흐르는 물을 마구잡이로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특히 백운산 흥룡사의 전신인 내원사의 사적(事蹟) 중에는 백운산을 천하에 둘도 없는 절승(絶勝)으로 기록하였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운산은 세 곳 중의 으뜸이요 사산(四山)중에 뛰어나다. 태백산(太白山)은 웅장하고 가파르며, 봉래산(蓬萊山)은 여위고 험준하며, 두류산(頭流山)은 살지고 탁하며, 구월산(九月山)은 낮고 민둥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백두산(白頭山)의 정맥(正脈)으로 단정하게 뻗어내려 험준하지 않고 민둥산도 아니며, 봉우리가 유하고 높으며, 계곡이 깊고 멀며, 지세(地勢)가 정결하고 수기(水氣)가 청백(淸白)하다. 암석은 기이하고 괴이하며, 송백(松栢)은 빽빽하고 푸르다. 구슬 같은 나무와 구슬 같은 숲이나 이름모를 화초들은 잡스럽지 않고 상서로운 연하(烟霞)는 구름같이 피어오르며, 귀여운 산 짐승들이 서로 엉겨 노닐고 우아한 산새들 또한 어지러이 날고 있네. 이와 같은 절승(絶勝)이 천하에 어찌 또 다시 있겠는가?” 봄에는 기이한 화초가 피어나고 계곡을 따라 물풀이 흐드러져 때때로 산새들이 노래를 한다. 혼자 여행을 떠난 본인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산사의 고즈녁함은 재미를 떠나 심신의 피로를 훨훨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산속 깊은 곳에서는 청정한 산채(山菜)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여름이면 얼음 같은 옥수(玉水)가 굽이쳐 흐른다. 또한 가을이면 온 산이 붉게 물들며 짐승의 먹이가 되는 머루 다래가 흐드러지고, 겨울이면 온 산을 뒤덮는 설경(雪景)이 선경(仙境)을 이룬다. 이동면(二東面) 도평리(都平里) 백운동계곡(白雲洞溪谷)에 있는 선유람(仙遊覽)은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고 한다. 선유람은 백운산 기슭을 돌며 흐르는 영평천 상류의 계곡으로서 하나의 선경(仙境)을 이루고 있다. 물에 잠긴 암벽, 맑은 물위에 드리운 신록의 초목과 우거진 소나무의 그늘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린 듯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 암벽에는 선유람(仙遊覽)이라는 세 글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는 데, 이것은 임진왜란 때 원병차 나왔던 양봉래(楊蓬萊)의 글씨라고 전해지고 있다. 백운계곡을 있게 한 백운산일대는 경기도 내에서 1,000m 급의 높은 산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산악지대다. 그 밑으로 국망봉, 명지산, 화악산이 이어져 있으며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백운산은 경기도산의 유순함 보다는 그 산세의 수려함이나 험준함이 강원도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교통편이 좋은데다 흥룡사 일대의 백운계곡은 수류가 풍부하고 계곡이 깊어 여름철엔 가족동반의 피서객이 많이 몰려온다. 산행코스도 잘 나있어 해발 600여미터에 이르는 광덕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그중 일부는 흥룡사 계곡으로 들어가 흥룡봉으로 등산하기도 한다. 광덕산과 붙어있어 어느 산을 택해도 좋은 산행이 될 것이다. 특히 겨울은 적설량이 많아 설경이 아름다운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캬라멜고개라 불리우는 광덕재에서 시작하여 흥룡사로 내려오는 길이 좋다. 흥룡사에서 시작하여 화천의 사내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캬라멜고개라고 한다.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캬라멜 고개는 한국전 당시 길이 험하고 꼬불꼬불해서 피곤한 미군 운전병이 자주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어 졸지마라고 상관이 캬랴멜을 먹여가면서 운전하게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다른 말로는 화천 쪽 마을 이름이 광덕리이기 때문에 광덕고개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개 정상을 기준으로 경기도는 백운계곡, 강원도는 광덕계곡이다. 광덕고개의 꾸불꾸불한 모양이 낙타의 등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카멜(Camel:낙타)이 카라멜로 변하여 카라멜고개로 불리게 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백운산은 799m의 박달봉과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1,246m의 광덕산 등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어우러져 고산준령을 이루고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옥수가 어우러져 구비마다 전설을 간직한 취선대등 절경이 사계절 모두 독특한 배경을 간직한 채 도심에 찌든 세인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으며 포천의 특산물인 이동막걸리와 이동갈비의 별미를 즐길 수 있고 최상의 등산로가 산을 찾는 모든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골짜기를 백운동이라고 부른다. 흥룡사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흰 구름이 늘 끼여 있어 백운산(白雲山)이라 불러 오다가 동네가 생기면서 백운동이라 하였다. 백운동은 백운동계곡으로 더욱 유명한데 그 길이가 장장 10여Km나 된다.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과 백운산 연봉, 박달봉 등에서 발원하는 영평천 상류의 벽담옥수는 글자그대로 명경지수다. 이 계곡에는 천년고찰의 흥룡사가 있어 창건 당시에는 명산대찰로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계곡을 오르기 전 도평리 상부에 자리한 흥룡사는 찾기가 어렵지 않으나 계곡 연변으로 자리한 상점과 민박집, 술집들로 인해 관광이나 휴가가 아니고 신앙심을 목즉으로 한다면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을 수도 있다. 흥룡사 뒤쪽에는 약 1Km의 선유담 비경이 펼쳐져 있다. 길가에 서 있는 간판을 보고 물에 걸린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작아도 250여대의 자가용을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이 산행의 들머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산행도 좋고 흥룡사를 찾는 것도 좋지만 가족단위의 야유회도 좋은 곳이다. 특히 물이 맑아 한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라보면 성벽같이 쌓은 축대를 돌아 나 있는 붉은 차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약 5분을 걸으면 정면 좌측으로 성벽 같은 출입구가 있다. 그리고 약 20여보 앞의 물돌이 앞에 부도가 있다. 이곳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인 흥룡사다. 신라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했을 때는 내원사(內院寺)라 했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도선이 절터를 정하려고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깎아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고 여러 채의 요사채를 거느린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조선 초 자초(自超)가 중창하고, 1638년(인조 16) 무영(無影)이 중건하였다. 1639년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백수십 칸 규모의 선원인 상선암(上禪庵)을 지었으며, 1648년에는 청암(淸巖)이 50여 칸 규모의 보문암(普門庵)을 지었다. 1786년(정조 10) 태천(泰天)이 중건한 뒤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라 고쳤으며,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黑龍寺)라 고쳤다가 곧 현재의 이름인 흥룡사로 바꾸었다.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7년 관음전, 1982년 백운당, 1987년 대웅전 순으로 중건하였다. 이 중 백운당은 주지실이고, 관음전의 일부가 요사채로 쓰인다. 무영의 부도와 청암의 부도가 있다. 특이한 일이지만 흥룡사는 출입구가 순리적이지 않다. 사찰은 대부분 계곡의 입구에 그 출입구가 있지만 흥룡사는 계곡을 빙 돌아 들어가 계곡의 높은 곳에서 들어가는 형식이다. 아 출입구는 성벽과 같은 모양이고 그 앞에 향토유적 제35호인 흥룡사 청암당부도(興龍寺 淸巖堂浮屠)가 자리하고 있다. 청암당 부도는 조선 인조26년(1648년) 흥룡사의 암자인 보문암을 창건한 청암대사의 사리를 안치한 곳으로 최근으로 이곳에 옮겨온 것이라 한다. 이 부도는 옥개가 팔각원당형의 기본을 따른 것으로 대석은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탑신은 원형이며 보개는 없어졌다. 탑신에는 [청암당]이란 각자가 음각되어 있다. 각 부의 재료는 화강암이며 총높이는 156cm, 탑신의 중심둘레는 214cm이다. 현재 이 부도 옆에는 [묘화당(妙化堂)]이라 새겨진 석종형의 부도가 나란히 서 있다. 탑신에는 [강희이십년]이란 각기로 보아 숙종7년 (1681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이 부도는 본래 보문암에 안치했던 것이나 군부대에서 환경정리를 위해 운반하던 중 사고가 잇달아 이곳 절로 모셔와 현 위치에 안치한 것이라 한다. 부도밭을 잘 살펴보면 계곡의 물이 급하게 회오리치듯 밀려오는 방향이라 충(沖)이 의심되는 지역인데, 고승의 사리가 지닌 원력으로 물을 막아 아랫마을이 물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 이곳에 세웠다면 비보풍수에 해당할 것이다. 성벽 모양의 출입구를 들어서면 흥룡사가 의외로 작은 사찰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일제시대에는 대단히 재산이 많은 사찰이었는데 25교구인 봉선사와 봉영사, 흑룡사 등의 사찰들이 전답을 희사해 진접읍 장현리에 광동재단을 세워 학생들을 가리켰다고 한다. 아무튼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제법 넓은 터에 대웅전과 요사를 겸한 두개의 당우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가건물이라 정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조성한 석물과 지장보살 등이 있기는 하나 격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눈에 뜨이는 것은 두 가지로 대웅전의 위치다. 전형적으로 주산을 등에 진 배산임수의 형국인데 여기는 유독 두개의 게곡 사이에 위쪽으로 자리 잡은, 물이 모이는 두물머리 위다. 주산은 전형적인 금형산으로 안정적이고 기맥이 무척이나 강하다. 다른 한 가지는 교쇄가 매우 뛰어나다. 청암당 부도에서부터 물이 크게 밖으로 휘어 궁수를 이루었는데 그 밖으로 청룡이 몸을 감듯 가깝게 다가와 크게 만복하며 뻗어나가는 교쇄를 이루니 전형적인 금게포란의 대지다. 과거 대찰이었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물소리가 조금 크다는 사실이 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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