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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영식 선생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7-11 조회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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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된 홍영식 선생의 묘역은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문장리 산8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여주군에도 가장 서북쪽에 치우친 지역인데 이천시 백사면과 인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풀이 발목을 잡고 얼굴을 할퀸다. 경사가 45도는 넘을 것 같은데 군데군데 나무를 이용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불과 200미터를 올라가자 묘역이 나타난다.
오른쪽에 비석이 서 있는 이 묘역의 주인 홍영식(1855~1884)선생은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개화 주역 중의 한사람이다.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 본관은 남양이고,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이며 충정공 홍만식의 동생이다.
고종 10년(1873) 문과에 급제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와 참의통리내무아문사무,참의군국사무, 참의교섭통상사무를 역임했다.
고종 20년 (1883) 협판교섭통상사무를 지내고 전권부대신으로 미국에 다녀오고 병조참판이 되었다. 이해 우정국총판으로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당 동지들과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우의정이 되었으나 3일 만에 청나라의 개입으로 무너지고 대역죄인으로 사형을 받았다.이후 갑오경장으로 신원되어 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라 내려졌다.
묘는 광주군 초월면 쌍룡리에 있다가 1903년 현위치에 이장된 것이다.봉분 앞 중앙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우측에는 옥개를 얹은 「금석선생 남양 홍공 영식지묘(琴石先生 南陽 洪公 英植之墓)」라고 쓴 묘비가 서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묘역을 조성하기 위해 깊이 판 땅이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사성은 애초의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바로 능선이다. 즉 묘역은 능선의 옆으로 모셔졌는데 기맥의 흔적이 보인다.
두 번째 눈여겨 보이는 것이 묘역에 이르는 동안 보이는 바위들이다. 일러 말하기를 바위는 기의 증거라! 전순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곳에 도출되어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은 왕성한 기맥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묘역 위로 올라가면 천덕봉과 원적봉을 거쳐 내려오는 행룡이다. 묘역은 이 행룡 옆으로 방향을 90도로 틀어 계곡 방향을 보고 좌향을 정했는데 이처럼 용맥에서 90도 틀어 방향을 정해 묘역을 조성하는 경우는 지각이 완벽하게 갈라져 나간 형태이거나 잉혈, 혹은 와혈에 해당한다.
용맥뒤로 살펴보니 마치 담을 쌓은 듯 보이는 바위가 용맥을 이루고 있다. 대단한 힘의 기맥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묘역을 이룬 곳이 와혈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귀성이 없다. 그럼 기맥이 갈라진 요도인가? 살펴보니 바위가 무성한 곳에서 한줄기 기맥이 갈라져 나가고 이 곳에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아서는 잉혈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좌우측의 균형이 맞지 않고 우선 방향은 옆 산과 달라붙어 혈판의 모양이 나오지 않으며 기맥도 흩어짐이 느껴진다. 비혈이다.
언뜻 보아서는 혈처럼 느껴지는 곳이나 혈이 아닌 곳이다. 그러나 기맥은 탄 것이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향은 기맥의 흐름에 맞추었는데 혈판이 아닌 곳에 묘역을 쓴 것으로 보아 기맥을 찾았다고 하기 보다는 전면의 금형산을 안산으로 삼아 억지로 좌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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