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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맥을 자른 수주팔봉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7-21 조회수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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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수주팔봉은 충주에서 주덕으로 가는 3번국도와 19번국도를 연결하는 지방도로 변에 위치하고 있다. 3번국도를 타고 충주로 진입하기 전, 달천대교 못 미처서 괴산,수안보를 가리키는 안내판과 함께 우측으로 난 2차선 도로로 진입한다. 이 도로엔 들어서자마자 철교가 도로 위로 나 있다.
30여분 도로를 타고 달리면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와 함께 기암절벽의 수주팔봉에 도착한다.더욱 빠르게 찾아가려면 충주시내를 지나 수안보로 이어지는 19번 도로를 따라 달래강을 거슬러 올라가 가주 농공단지 앞을 거쳐 충주시내에서 나오는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 달리면 우측으로 향산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달천을 따라 들어가는데 약 300여미터를 가면 횟집이 많은 귀골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을 지나면 2차선 도로다. 이 도로를 따라 4킬로미터 정도를 가면 좌측으로 수주팔봉이 나타난다.
수주팔봉은 남한강 지류인 달천강을 끼고 있다. 달천강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충주시 탄금대 합수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난다. 예로부터 물이 달다하여 달천이라 하여 충주는 물론 괴산 및 인근 달천강변 마을의 주된 식수원으로 쓰이고 있다.
수주마을을 굽이돌아 마치 감싸 안은 듯 포근한 자태에 시원하고 빠른 물살은 30여m 높이의 삐죽삐죽 솟은 웅장한 칼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와 뒤 엉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예로부터 달천에는 수달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특히 이곳 칼바위 아래는 수달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칼바위 아래 폭포는 낙차는 그리 높지 않으나 수주팔봉의 운치를 한층 더해 주며 그 위로 소나무 그늘 아래 정자는 오랜 동안 이 곳이 많은 풍류객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장소임을 알려준다. 칼바위 폭포는 인위적으로 물줄기를 돌리기 위해 조성된 폭포인 점이 특이하다.
야영을 하기엔 충분한 넓은 백사장은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어도 좋을 법하다. 마을아래에는 조선시대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잘 보존되어 있어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칼바위 아래는 물살이 거세어 접근치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곳 칼바위 아래의 폭포는 여흥을 즐기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잘라낸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한 일환으로 잘라낸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풍수침략의 증거가 된다. 오래전부터 이곳이 일본인의 풍수 침략에 의한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들어왔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이야기가 더욱 신빙성이 있으니 말이다.
다른 이야기는 더욱 귀를 쫑긋하게 한다. 수주팔봉의 산맥으로 보면 문강리 문래산 줄기로서 약 300m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인데 그곳에 솟아있는 바위모양에 따라 갓모바위, 칼바위, 중바위, 송곳바위, 등의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이 칼바위를 비롯한 수려한 산중을 달내강 상류가 누비고 흐르기 때문에 수주 팔봉이 유명한 명승지로 손꼽게 된 것이다.
이곳의 지형을 보면 토계리 왕다래기 쪽에서 흐르는 석문천이란 개울이 이 칼바위를 한 바퀴 도는데 거리는 약 1km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바위의 중부를 절단하고 석문천 물을 질러 빼게 되면 그 하천부지가 수십만평이 될 것이라는데 착안을 하고 간척사업을 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절단되어 있는 곳은 석문천 바닥과 팔봉강 바닥과의 차이가 10m쯤 되므로 하나의 폭포가 생겼다.
칼바위 산기슭에 팔봉쪽으로는 넓은 농토가 있기는 하나 물가이면서도 물을 댈 수가 없는 지형이었다. 해방 직후의 일이었다. 이 곳에 밭을 가지고 있는 한 농부가 이 칼바위를 뚫어 물을 대볼 계획으로 공사를 시작한 일이 있었다. 정을 대고겉에 있는 잡석을 부순 다음 속에 있는 원석을 치니까 그 바위에서 갑자기 선혈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농부는 놀라워서 그 일을 중지하고 그곳을 도로 복구하는 동시에 영산(靈山)이라며 산신제를 지내 주었고 그 후부터는 이 산에 치성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촌로들 말에 따르면 간척사업으로 이 칼바위를 절단한 뒤로는 왕다래기 쪽의 마을에 불경기가 끊기지 않는 반면 팔봉마을엔 모든 일이 풍요롭게 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간척사업을 주도한 사람은 많은 논을 만들기는 하였어도 영산을 부순 관계로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수주팔봉의 인공 폭포는 일본인이 자른 것은 아닌 듯 하다. 일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직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수주팔봉의 낙차큰 폭포는 풍수인이 보기에 무척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월은치 방향에서 뻗어나온 기맥이 마치 용이 기어가듯 행룡을 하는데 목을 뎅겅 자른 형상이다.물을 돌려 얻은 농토로 곡식을 얻어 부는 축적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인걸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기맥을 잘라 물이 쏟아지는 방향의 마을은 물로 인한 직충을 받아 심한 경우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 폭포가 향하는 방향을 피하여 집을 지어야 한다. 또한 폭포소리는 마을에 구설수를 몰고 오고 농아자를 만든다.가임여성의 경우는 일정 기간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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