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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주 단호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7-21 조회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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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철불좌상과 소나무가 멋들어진 단호사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충주 나들목으로 나와 충주 방향으로 방향을 정한뒤 만나는 도로가 3번 국도다. 3번국도를 타고 약 5키로를 달려 달천강을 건너 충주로 진입하다 보면 철길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를 넘어 첫번째 사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충주댐을 비롯 원주 제천 방면이고 우측으로는 수안보, 문경 우회도로다.
이 사거리로부터 약2.5키로 정도의 거리, 자동차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건국대학교가 있다. 좌측으로 건국대학교 정문을 보았다면 불과 300여미터의 거리에 좌측에는 충렬사간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단호사가 나타난다. 횡단보도 신호등 우측으로 우람한 느티나무와 조그만 절이 바로 단호사다.
단호사는 충주에서 서남쪽으로 건국대학교 정문을 지나 단월초등학교 옆에 자리잡고 있다.수안보로 가는 길가 오른쪽으로 토담을 두른 곳이 단호사로 충주시 단월동 455번지에 자리한 태고종 사찰이다.
충주시 단월동 충민공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열사 앞에 사찰이 있고 경내에는 철불좌상을 모신 약사전 건물과 그 앞에 고려시대 작품인 3층 석탑(높이 2.14M)이 있다.
입구에도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좌측 담 옆으로 보이는 선돌이 그것인데 전형적인 양석이다. 남자의 성기 모양을 지닌 이 양석은 무심하게 넘길 수 없으니 이는 토속신앙과 풍수적 비보의 중간에 있는 석물이기 때문이다.선돌은 여러이유로 사용되지만 성기 모양을 지닌 선돌은 득남을 바라거나 일대가 음기가 강할 경우, 혹은 지세적으로 음석이 있는 경우에 비보목적으로 세워진다. 단호사에는 소나무와 더불어 득남의 전설이 있으므로, 만약 이전부터 이 남근석이 이곳에 세워진 것이라면 양석의 기능이 틀림없다.
들어서면 정면에는 전설을 지닌 소나무가 용처럼 가지를 드리우고 승천하듯 서 있고 그 속에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닌 탑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탑은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세월의 무상을 느끼게 한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탑은 초층 탑신에 우주(隅柱)를 새겼으나 서북쪽 우주는 다소 결손되어 다른 석재와 시멘트로 보강하였다. 초층 옥계석은 아래에 2단의 받침, 위에 방형의 1단 탑신괴임이 새겨졌다. 옥개석의 추녀 아래는 낙수홈이 있다.2, 3층의 탑신 및 옥계석은 초층과 유사하나 2층 옥개석의 받침만이 3단으로 되어 있다. 노반은 방형으로서 윗면 중앙에는 원형의 찰주공이 있다. 우주 및 탱주의 모각수법, 옥개석의 낙수면 등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듯 구불거리는 소나무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수령 약 500여년의 이 소나무는 일부러 그렇게 가꾼 분재마냥 구불구불 용의 몸부림을 보는 듯 자태가 황홀하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초기 강원도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문씨라는 사람이 재산은 많아도 슬하에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 날 한 노인으로부터 충주 단월 지방의 단호사에 불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얘기를 듣고 강원도에서 단신으로 이곳에 와 불당을 짓고 불공을 드리며 지성으로 소나무를 가꾸던 어느날 하루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고향 집 마당에다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안방에 부처님을 모셔 놓은 꿈을 꾸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부인의 꿈에는 단월 단호사 법당이 자기 집 안방으로 바뀌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 부인이 생각하기를 아마도 같이 살라는 암시인가 보다하고 강원도에서 모두 정리해 가지고 법당 옆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 후 태기가 있어 생남을 하게 되었다고 하여 그 후 많은 불도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소원 성취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무지막지하게 큰 시원한 느티나무 여러그루가 절을 덮고 있어 여름철 시원함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 느티나무 역시 지방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수령이 오래되었다.
좌측에는 시멘트로 새로 조성한 백색의 미륵불이 계신다. 그 옆으로 약사전이 있고 정면에는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철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단호사 철불좌상은 약사전의 주존불로서, 높이 1.3m며 나발로 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이마에 새로 만들어 끼운 백호가 있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법의는 통견이 유려한 곡선을 이루면서 양어깨 위로 넘겨져 뒷면에도 조식(彫飾)되었으며, 결가부좌한 양 무릎에도 의문(衣紋)이 표현되어 있다.
지금의 수인(手印)은 양쪽 손이 모두 파손되어 근래에 만들어서 끼웠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조성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11세기 고려 초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근에 있는 보물 제98호 충주철불좌상과 같이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는 사라지고 단정한 모습만을 보이는 것은 시대적 변화의 일면으로 볼 수 있으며, 지역적 특수성을 연구하는데도 소중한 자료가 된다. 단호사에서는 법당을 28평 규모로 석목조를 혼축하여 기둥을 세우고 다포집으로 조성한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이 철불 좌상은 매우 검은 색이다. 불상 전체에 짙은 황금색의 칠을 하여 불상 자체가 무엇으로 제작되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불상의 양 손목 부분이 부러져 다시 맞춘 흔적이 있어 그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긁어 보니 쇠 가루가 묻어 나왔다. 이 조사로 인하여 단호사의 불상이 철조 불상임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고 이로서 보물 512호로 지정 보호 받게 되었다.
이 불상은 높이가 130CM인데, 충주 지현동의 대원사의 철불과 그 모습이 너무도 같다. 크기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얼굴 몸체 의복의 형태 등이 마치 한 판에서 찍어낸 듯 같다. 따라서 대원사의 철불과 단호사의 철불은 같은 시대에 한 사람의 기술자에 의해서 제작되었으리라는 추측을 갖게 한다.
같은 시기의, 같은 양식을 갖춘 2구의 철불이 충주 지방에 전래한다는 사실과 이 지역의 많은 불교 유적지로 볼 때 충주지방의 불교 융성이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두 개의 불상이 고려시대 철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작품인 동시에 이러한 양식이 곧 고려 시대에 충주 지방 불사의 특징을 의미하고 있어 고려시대 불상제작 양식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단호사는 아주 작은 사찰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곳에 현재의 방향으로 세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사찰 대부분은 산을 등에지고 물을 바라본다. 그런데 단호사는 반대의 모습이다. 즉, 충렬사가 있는 방향이 산의 방향이고 단호사의 등뒤가 달천이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막연하게 예부터 그리 지어진 당우이고 철불좌상도 그대로 있었노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풍수와는 어긋난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도 길이 이곳에 있어 방향이 정해졌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은 풍수의 법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방향이 아니고 복원과정, 혹은 사찰의 보수과정에서 방향이 약간 틀어진 것은 아닐까?
즉 현재의 향과 약간의 각도를 달리 하여 철불좌상이 달천의 상류방향을 바라보는 형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된다면 비보풍수의 이치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달리 어떤 이유로 좌향이 정해진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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