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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탁사정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7-27 조회수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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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원주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 옛 도로변에 탁사정과 뛰어난 절경이 있다. 원주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남으로 향해 갈 때, 신림을 지나 봉양읍으로 향하다 보면 도로 연변에 물이 감아 도는 이곳이 제천10경의 하나라는 탁사정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제천을 들어오는 국도 5호선변에 자리하고 있는 제천근교의 유일한 유원지이며 여름 피서철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베론성지가 있다.
도착해 보면 뾰족한 산이 보이고 정자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물이 감아 돌고 넓지 않지만 오밀한 공간에 모텔과 식당들만 자리하고 있어 얼핏 계곡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을 따라 걷거나 주변의 산에 오르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절경이 숨어 있다. 탁사정은 나즈막한 산위 송림 속에 있으며 바로 올라갈 수는 없고 뒤로 올라가야 하며,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운치를 느끼게 해준다. 그 모습은 고색의 빛이 바래 보이지만 우리 정서에는 어울리는 모습이고 정자가 아니라도 굽이로 펼쳐진 계곡과 천연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용암천이라 불리는 이 계곡은 치악산 상원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봉양읍으로 흘러드는데, 이곳의 산세가 자못 높고 험준하며,갈지자를 이루어 흐르는 깊은 물은 이곳에서 반원을 그리며 한구비를 돌아 나가는데 한쪽은 깍아지른 절벽에 반대쪽은 깨끗한 모래사장과 송림이 어우러져 있어 제천 제일의 절경을 이룬다.
단순히 바위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주변에 숙소로 삼을 만한 곳이 적지 않고 강가의 모래사장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피서객이 몰려 야영과 물놀이를 하며, 모래사장에서 물길을 거슬러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물에 씻긴 반들반들한 바위들 사이로 작은 폭포를 이루어 흘러내리는 청류가 절경을 이룬다.
탁사정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다. 물론 부근의 물길도 그리 넓은 곳은 아니지만 탁사정 부근은 강보다 작지 않다. 강 주위는 바위지만 탁사정의 정자로 오르는 길은 바위와 흙이 골고루 섞여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탁사정을 오르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탁사정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고 소나무 숲 속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각도가 제법 심하다. 탁사정으로 오르기 전에 만나는 절벽 안쪽에는 넓은 바위가 있고 그곳에서 보는 탁사정 풍광은 일품이기도 하고 또 훌륭한 계곡 낚시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탁사정 모텔 뒤로 난 산길을 넘어가면 모래사장 앞으로 나가게 된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굵은 자갈이 많지만, 마치 인공 해수욕장마냥 잔잔하고 운치 있을 뿐 아니라 송림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더없이 훌륭한 피서지가 되어준다.
탁사정을 돌아나가는 도로변으로 작은 산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오르면 탁사정이다. 솔숲에 가려 조망되는 풍경이 적은 게 흠이지만, 빛바랜 정자가 옛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제천 10경의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탁사정 정자에 올라보면 분명하게 탁사정이라 쓰여있다. 아울러 탁사정에 쓰인 정(亭)자는 정자를 의미하는 말이지 풍경을 말하는 글로는 쓰이지 않는다. 무언가 오해가 있을 법도 하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뒤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다.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하였으며,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 10월에 팔송마을 및 제방둑에 20그루의 해송을 마을에서 심었다. 구한말 정운호(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적의토벌 지휘에 맹활약)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 대암이 이곳이다.
탁사정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강을 바라보는 방면으로 향을 잡는데 그 이유는 꿈의 궁전 옆으로 난 산에서 기맥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길이 산맥을 잘랐는데 이정도의 깊이면 산맥이 잘려 기맥이 잘리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전형적인 사두형 산세다. 바위로 이루어진 기맥이 어느 정도의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좌측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굽이들 돌며 충을 하려다가 다시 휘어져 나가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좌측으로 작은 지각이 뻗어 충을 방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선익이 발달한 지각인데 자연적으로 혈이 이루어지면 이처럼 충을 방어하는 지각이 생긴다.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혈판은 우측으로 치우쳤다. 살펴보면 좌측으로 지각이 뻗어나가고 우측으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판이 형성되어 있다. 혹자는 이곳에 묘를 쓸 수 있으나 바람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조상들은 예로부터 혈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기맥이 강하거나 혈임에도 충이 있으면후손에게 위험이 예측되어 묘를 쓰지 않고 누구도 묘를 쓰지 못하도록 정자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탁사정도 그런 곳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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