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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종직의 고향 추원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8-17 조회수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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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밀양시에서 내이동 방향으로 나서서 제대 4거리를 지나 수백미터를 가면 길가에서 보이는 좌측 마을 멀리 고택 모양의 유적지가 나타난다.길 옆에 표지판이 김종직 선생의 고가임을 알린다.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701번지. 마을 입구에 수령을 알 수 없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 그늘을 만들어 준다. 느티나무 바로 위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그 위로 단촐한 고택이 있고 마을은 마치 조개속처럼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가구수는 많지 않고 그다지 뛰어난 곳도 아니지만 흠잡을 것도 없는 수수한 마을이다.
김종직이 자라난 곳이라고 하는 안내간판이 붙어 있다. 경상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59호로 추원재라는 이름을 가졌다. 부북면 제대리 한골에 있는 추원재는 조선조 성리학의 초조인 강호 김숙자(1389-1456)가 처음 거처를 정하였고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태어나고 자라고 별세한 집터다. 점필재의 생가뿐 아니라 그가 만년에 제자들과 토론하고 강학하던 쌍수정도 있고 뒷산에는 점필재의 묘소가 있는 성지다.
여러차례의 전란을 겪고 오랜 세월의 변천으로 생가 등 유적의 원형을 지키지 못하다가 순조10년(1810년)에 선현의 유적이 황폐한 것을 개탄하고 사림들과 후손들이 합의하여 건물을 개조 중건하여 추원재라 하고 당호를 "전심당"이라 하였다.
"전심"이라 함은 동방의 성리학이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에게 전했으며 강호는 아들 점필재에게 전하고, 점필재는 김 한휜당과 정일두에게 전했으니 점칠재는 조선조 심학의 전수자라는 뜻이다.
추원재라는 이름은 안동을 비롯해 여러곳에 있어 낮이 익다.안으로 들어서니 단촐한 구성을 지닌 곳이다. 양택으로서는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점도 보이지 않지만 내당으로 뻗은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눈을 잡는다. 추원재에서 새삼 느끼는 것은 양택 삼요의 법칙이다. 즉 배산임수와 전저후고, 전착후관의 양택삼요는 우리 조상들이 일구어내고 지켜온 양택의 기본철학인데 지금에 와서는 무너지고 있는 법칙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2006년 8월, 추원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김종직의 묘역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추원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으로 오르는 대나무 사이길이 있다. 예전에는 추원재를 통과하여 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담을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추원재 뒷산의 공간이 잘 보인다.
대나무 사이로 200여미터를 오르면 돌로 쌓은 축대가 보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묘역이다. 김종직은 역사적 사실로 보여지는 바 역사성이 있으나 묘역은 그다지 뛰어난 바가 없다. 언뜻 보아서는 고즈녁하게 보이나 풍수의 이법을 완전히 무시한 배치다.
형상적으로 보아도 전형적인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언뜻 보아서는 좌우로 지각이 뻗어나가 겸혈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겸혈과는 거리가 멀다. 비탈과 계곡에 위치한 김종직의 묘는 바람이 차고 살풍이 밀려올까 두려운 곳이다. 음택에서는 아무리 비보를 하여도 방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설이다. 아무리 많은 대나무를 심어도 불어오는 계곡풍을 막기에는 자연의 조화가 더욱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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