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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용유도의 큰 사찰, 용궁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8-19 조회수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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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영종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동에 속한 섬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하면서 널리 알려진 섬이다. 서쪽과 서남쪽으로 신도(信島), 시도(矢島), 삼목도(三木島), 용유도(龍遊島), 무의도(舞衣島)와 마주하며, 삼목도, 용유도와는 연륙도로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용유도와 삼목도는 이제 사라진 듯 보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연륙도로를 만들고 안을 메워버려 하나의 섬이 되었다. 따라서 오래 지나면 영종도는 남아있겠지만 용유도와 삼목도라는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선남선녀들에게 애환과 추억을 남긴 을왕리 해수욕장은 이제 용유도가 아닌 영종도의 해수욕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종도는 원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 ‘자연도’(紫燕島)라고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 소속 영종진으로, 1875년 인천부로 이속되었다가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9년 인천광역시 중구로 편입, 영종동으로 개칭되었다.
섬 중앙에 솟은 백운산(白雲山:255.5m)에는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용궁사(龍宮寺)가 자리잡았다.
신공항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 신불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유턴을 하여 구읍, 즉 인천의 외항과 연결되는 영종도 선착장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운남동으로 들어가는 좌측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영종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다는 용궁사를 만나게 된다. 입구에서 사찰까지 약 1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은 넓지 않지만 차가 다니기에는 부족하지 않고 한여름에는 시원하다.
대원군이 10여년 기거했다는 용궁사에 도착하여 바라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1300여년이나 되었다고 알려진 노거수다. 10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는 여럿 보아왔던 터이지만 1300년이 된 느티나무는 흔하지 않다. 더구나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가 쌍을 이루고 있다. 약 1,300년이 된 할아버지 느티나무와 할머니 느티나무 두 그루가 용궁사의 역사를 말해 주며 운치를 더한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용궁사 느티나무는 용궁사의 전신인 백운사가 천년고찰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용궁사는 영종도 백운산 기슭 평평한 대지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라 하였다고 전하며 일명 구담사(瞿曇寺) 라고도 한다. 조선조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이 중창하여 용궁사라 개칭하고 고종이 등극할 때까지 이 절에서 칩거하였다고 한다.
용궁사에는 관음전, 용황각, 칠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최근에 만든 높이 11m에 달하는 미륵불이 있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용황각이 나타난다. 물을 상징하는 불가의 한 신이다. 용황은 애초의 우리 민속에 나타난 신적인 존재인데 불교가 유입되며 교화되는 괴정에서 이입되어 지금은 불가의 신으로 인정되는신이다. 이는 전래 종교가 토속적이고 토테미즘 적인 문화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웅전 오른 쪽으로는 요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찰 건물이라고 하기보다는 고택으로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요사채는 맞배지붕이며, 건물 앞면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용궁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요사체 뒤에는 2채의 당우가 자리하고 있다. 좌측은 관음전이고 우측은 칠성각이다. 용궁사 관음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기둥에는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주련)가 4개 남아있다. 내부에는 본래 옥으로 조각한 관음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에 도난당하고 현재는 청동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하며 현재 그 옥불은 없고 모조 옥불을 모시고 있다. 현재는 후불탱화를 배경으로 한 1척 정도의 앙증맞은 관음상이 걸려 있으며 건물 전면에는 해강(海岡)김규진이 쓴 4개의 주련(住聯)이 걸려있다.
우측의 칠성각(七星閣)은 칠성각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으며,정면에는 칠성신을 모시고 우측은 독성, 좌측은 산신을 모셨다. 칠성각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 신앙과 융합된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관음전 좌측의 계단을 따라 오르면 소망을 비는 돌이 있다.
전체적으로 용궁사는 매우 포근한 지세를 지니고 있다. 모나지 않고 골도 깊지 않으며 강한 기맥을 갖고 있지도 않다. 충살을 보기 어렵고 안정된 지세위에 자리를 잡아 전형적인 사찰의 터임을 알 수 있다. 언뜻 보아서는 앞이 열려 있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나이를 먹은 나무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어 작은 계곡을 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랜 세월동안 나무들이 잘리고 다시 자라고 또 자라기를 반복했겠지만 지금도 나무의 근간을 보여주고있다.
관음전 앞에 서서 바라보면 바닷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멀리 바다를 산이 가로막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섬이면서 물이 보이지 않으니 이는 완벽한 교쇄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금 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인 사실이지만 어느날에도 바닷바람이 밀려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교쇄가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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