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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양 월연정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8-30 조회수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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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강가의 월연정
영남루에서 강변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3킬로를 가면 용평교가 나타나고 지나치면 곧 활성교가 나타난다. 그리고 활성교 끝단에서 불과 100여미터의 거리에 작은 누각이 있다. 바로 심경대다. 이 곳을 지나 약 1킬로미터를 강가로 달려가면 영화 “똥개”의 촬영지로 이용되었던 터널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두개의 길이 있다. 하나의 길은 산기슭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고 다른 하나는 강가의 대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오솔길이다. 이 오솔길이 시작되는 곳에 월연정이란 작은 간판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 가는 길은 강가로 걸어가는 길이다. 그러나 강을 접할 수는 없다. 강과 오솔길 사이에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100여미터를 걸어가면 월연정을 만날 수 있다. 월연정은 여주이씨의 재산이며 언제나 드나들 수는 없는 곳으로 관리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다. 두개의 공간을 모두 살펴보아야 월연정의 백미를 알 수 있고,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백송도 볼 수 있다.
밀양시 용평동 2-1번지에 해당하는 월연정은 조선 중종때 이태선생이 본래 월영사(月影寺)의 옛터인 월영연에 지은 별장이다. 월영 이태선생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중종 14년(1519) 함경도 도사(都事)로 재직 중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 은퇴하였다. 선생은 중종 20년(1525)에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정당(正堂)을 쌍경당(雙鏡堂), 대(臺)를 월연대라 이름지었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병화로 불탄 것을 영조33년(1757)에 6대손인 월암 이지복(月庵 李之復)과 그의 종질(從姪) 수사(水使) 우호(牛湖) 홍(泓)이 쌍경당을 복원하였다. 그후 고종3년(1866)에 10대손 일성 이장운(日省 李章雲) 11대손 수당 종상(睡堂 鐘庠) 처사 종증(處士 鐘增)이 월연대를 중건하였으며 1956년에 제헌(齊軒)을 세웠다.
월연대는 지붕 구조가 합각이면서도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깝게 축조되었고,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회랑(廻廊)식으로 마루를 두어 4면으로 주변 경치를 조망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러한 평면 구성은 한국 전통건축 중 보기 드문 예다.
쌍경당은 정면 5칸의 사랑채형 건물로 축조되었고 이익공식(二翼工式)의 포작(抱作)에 화두(花頭)를 두어 건물에 화려함을 주고 있다. 지금 경내에는 쌍경당, 월연대, 재헌등의 건물외에도 한림이공대(翰林李公臺), 탄금암(彈琴巖), 쌍청교(雙淸橋) 등의 유적 및 백송, 오죽 등 희귀 수목이 있다.
월연정은 유희와 사색, 은일자중하는 모든 선비들의 멋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특히 바위위에 지어진 정자는 이 공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계곡을 나누어 배치한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다.
월연정은 전형적으로 물이 돌아가는 구비에 있다. 강이 가깝기는 해도 물이 궁수로 돌아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은일자적하는 아름다움과 옛 선비의 멋이 넘치는 곳이라 해도 상주하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즉 물이 가까운 곳은 경치가 뛰어나고 소요는 그럭저럭 어울릴 수 있으나 오래 머물면 해수병이 걸리고 폐에 관련된 병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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