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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도화향이 코르 스미는 느낌, 죽림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8-31 조회수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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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청도읍에서 20번 도로를 이용해 화양읍으로 간다. 화양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들어가 화양읍 사무소를 우측에 두고 조금 더 가면 동산리 마을이 나타나고 곳곳에 죽림사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죽림사를 찾아 가려면 탐스러운 감과 복숭아 마을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도에서 화양읍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난 신봉리 방면 도로로 접어들면 죽림사 표지판이 참배객을 기다리는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붉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을 끼고 30분 정도 더 들어가야 죽림사가 있다.
동산리에서 죽림정사로 오르는 길 입구는 조금 찾기가 어렵지만 신봉리마을로 들어서면 쉬워진다. 마을 중앙으로 난 좁은 도로는 여러번 굽이치듯 꺽이지만 계속해 이어진다. 지도에는 길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복숭아 나무가 자란다는 이곳이 홍도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복숭아 과수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숭아와 감나무가 심어진 과수원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타고 약 3키로정도의 거리 산 중턱에 단촐한 죽림사가 있다.
죽림사는 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남산하면 서울의 남산과 경주의 남산이 대표적인 산이다. 우리나라에는 남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산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이름하여 남산은 어느 지역의 남쪽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산이다. 어느 지역의 남산도 웅장하거나 큰 산이 아니고 알맞게 크고 사람이 오르내리기 쉬운 산이다.
청도의 남산은 해발 829 m의 높이로 청도읍, 화양읍, 각남면 3개읍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산으로 청도의 진산이다. 청도의 관광지는 대부분 남산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서국 패망의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은왕봉과 깎아지른 듯한 높이 30m의 낙대폭포는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하여 약수폭포라고도 한다. 이 산기슭에 그다지 크지 않은 사찰로 죽림사가 있다.
화악산(華岳山)의 지령인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610년(진평왕 32년)에 법정대사(法定大師)가 창건하여 화남사(華南寺)라 했다. 635년(선덕여왕 4년)왕의 명으로 일본에 건너가 불교의 포교와 화친사(和親使)로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니 왕은 절 주변 토지 900여평을 하사하고 대나무를 심게 하였다. 이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게 되자 죽림사(竹林寺)라 개칭하고 사원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그 후 왕사였던 지눌 보조국사(知訥 普照國師,1158∼1210년)가 1180년(명종10년)경 중건하고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년)가 중수하였으나 임란 때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소실되고 보광전(普光殿)만 남은 것을 인덕당(人德堂)을 세우고 불상을 봉안해오다 다시 법당과 요사(1935년)를 건립하고 1999년 법당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보광전, 칠성각, 산령각, 요사 등이 약간의 전답과 함께 남아 있다. 유서 깊은 큰 대나무 밭은 오랜 세월의 변천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대나무 수십 그루만 남아 있어 옛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근래에 절의 축대를 새로 쌓고 법당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죽림사의 좌측은 제법 깊은 골이 있는데 물이 맑고 암반이 깔려있어 한여름에는 시원함을 즐길 수 있다. 죽림사는 단촐함이 아름다운 절이다. 새로이 불사를 일으키고 있어 새로운 면모가 기대되는데 그다지 넓은 터가 아니어서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죽림사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계곡이 열려 멀리 모든 것이 다 보이는데, 이는 교쇄가 이루어지지 않아 계곡풍을 맞는 것을 의미한다. 비보적으로 사찰 앞쪽으로 식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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