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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재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간월사지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8-31 조회수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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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통도사에서 35번 도로를 타고 언양 방향으로 오래가지 않아 좌측으로 자수정 동굴나라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이 간판을 보고 약 1킬로미터를 가면 좌측으로 작천정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약 5킬로미터를 들어가면 언양온천이 나오고 근처 여관 사이에 간월사지가 있다.
간월사지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불이 있으며 간월사지 전체는 울산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사지내에는 비지정 문화재 이지만 8세기를 대표하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3층쌍탑이 복원되어 있다. 이탑의 특징은 1층 몸돌에 힘찬 인왕상이 4면에 각2구씩 8구가 조각되어있다. 마치 석굴암의 인왕상을 보는듯한 국보급 조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쌍탑은 비문화재다.
당우가 하나있다. 당우 앞에는 한쌍의 불상이 마치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불당앞 양면에 있는 2구(軀)의 좌상(坐像)은 두부(頭部)의 결실을 후보(候補)한 것인데 조잡하여 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좌고(坐高) 1.35m다.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은 1963. 1. 31일에 보물 제370호로 지정되었고신라 28대 진덕여왕(647∼653)때에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간월사의 불상이다. 약간의 손상은 있지마는 신체면은 비교적 남아 있다.
광배(光背)는 결실되었고 둥근 얼굴에 풍만한 체구의 좌상인데 상체가 다소 위축된 느낌이 있으며 목에는 형식적인 삼도(三道)가 표현되었고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으로 되어 있다.통견(通肩)한 법의는 얇은 U자형의 의문을 그렸고 현재 하대(下臺)라고 보여지는 8각대좌의 각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울산지방에 현존하는 불상가운데 유일한 보물로 지정된 불상으로 국비를 들여 79년초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불당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뒤로 돌아가보면 작은 요사가 있고 좌측 언덕 위에 간월사지 공간과 두개의 탑이 있다. 간월사는 일반적으로 신라 진덕여왕(647-654재위)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법맥을 이어 오다가 1592년 임진왜란 때에 폐사되었고, 그 후 1634년(조선 인조 12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간월사지는 1750년 “해동지도”와 1800년 이전의 것인 “광여도”, 1834년 “청구도”에서 확인된다
동서탑의 경우, 서탑은 맨땅에 자리하고 있으나 동탑은 바위위에 자리하고 있다. 탑의 건립연대는 상, 하층 기단의 탱주가 2개, 인왕상과 문비, 쌍탑이라는 특징을 들어 탑의 건립이 절정을 이루던 8C 중엽으로 추정되며 울산에서는 유일한 인왕상을 갖춘 중요한 탑이다.
울산지역의 쌍탑으로는 영축사지에 있는 무너진 쌍탑이 있으나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형태를 띠고 있어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간월사지 인왕상과 거의 흡사한 인왕의 형태는 경주국립박물관 휴게소 앞 야외전시장에 있는 인왕상 모서리기둥(경주 하동, 통일신라 9C, 84.0x45.0cm) 탑재를 들 수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인왕상의 모습은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의 인왕들을 표현하고 있으나 경주박물관의 인왕상과 간월사지 인왕상은 정말 흡사하다.
간월사지는 대단히 큰 사찰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산을 주산으로 멀리 외청룡과 외백호가 확연하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탑이 올려져 있는 바위 줄맥이다. 이 맥이 내청룡이 될 수도 있으며 이 맥이 중간의 중출맥 이었다면 대단히 강한 맥이 된다. 바위로 이루어진 내맥의 존재는 이 터가 어느정도 힘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이 내룡맥은 강한 기맥의 영향으로 인해 현재도 음택 터가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 새로이 조성한 용왕전과 용왕상은 이 터를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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