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 도로를 타고 언양 방향으로 오래가지 않아 좌측으로 자수정 동굴나라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이 간판을 보고 약 1킬로미터를 가면 좌측으로 작천정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눈여겨 볼것은 작천정게곡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의 벚나무 숲이다. 조선조 세종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여 지었다는 정자주변의 절경속에 깨끗한 물과 흰 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선경지대를 방불케하며 입구의 벗꽃 터널도 유명하다. 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흘러 등억리를 지나면서 작천정 앞을 흐르는 시내를 작괘천이라 한다. 작괘천은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서 일찍 언양지방의 위안처가 되어왔다. 개울가에는 푸른 소나무가 운치 있게 뿌리내리고 날아갈 듯 추녀가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작천정(酌川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이 정자는 조선조 고종 때의 현감 정긍조가 시화를 열고 정각 짓기를 제안 했다고 한다.그 제안에 모두들 찬성 했지만 뜻은 이루질 못했는데 후임으로 최시명이 1902년 정각을 세워 작천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눈여겨 볼 것은 작천정이 아니고 바로 계곡 입구 수남마을 앞을 가리고 있는 벚나무 숲이다. 언뜻 보아도 100년은 되어 보이는 벚나무는 작은 길을 좌우로 두줄로 심어져 있는데 단순히 길가 도로 옆으로 심어진 나무들은 아니다. 수남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인데 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어진 비보림이다. 수남마을의 경우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인데 삼남면 방향이 열려 있어 허약하므로 살풍을 막기 위해 심어진 것이다. 물론 도로를 보호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심은 나무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허한 방향을 차단하기 위해 심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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