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98호 신라적성비의 위치는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다. 높이 93cm에 상부의 폭이 107cm, 하부의 폭이 53cm이며 두께는 25cm다. 마치 하트모양으로 생겼는데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그토록 오래된 신라시대의 비석이 이토록 선명한 글씨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적성비는 적성산성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 제265호로 지정된 신라 적성은 규모로는 길이가 923m에 이르고 내부의 면적은 26,816평에 이른다. 적성산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나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협축한 부분의 안쪽벽 높이 2∼3m, 폭1m의 석축이 일부 남아 있다. 삼국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 성내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신라의 북진과 이곳 주민들의 선무활동이 담긴 내용으로 전승 기념비적 내용으로 국내 최고의 금석문이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고속도로를 타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적성산성으로 오를 수가 있다. 휴게소에서 적성이나 적성비까지는 불과 500여미터에 불과하지만 휴게소에서 적성비에 이르는 입구 표시가 없고 국보가 있음에도 설명이 부족하다. 적성비는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일대에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한 내용이 담긴 기념비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척경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 야이차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시책과 민심을 안정시키고 주민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이 석비의 건립연대는 신라 진흥왕6∼11년(545∼550)경으로 추정된다. 이 비는 1978년 1월 6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으며, 석질은 자연석 화강암으로 창녕의 진흥왕 순수비보다 10년전에 만든 국내최고의 금석문이다. 이곳이 과거의 치열한 역사의 흔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단지 주변을 살펴보면 고속도로로 인해 단산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적성비에서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정면 좌측의 높은 산을 허물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면 우선 방향의 높은 산 아래 골짜기에 돌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이 돌이 흐르는 모습은 풍수에서 뚜렷하게 지정한 단어는 없지만 현군사(縣裙沙)나 난의사(亂衣沙)와 동격으로 다루는 곳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돌이 많은 지역에서는 음행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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