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금 신도시에서 밀양시에 이르는 1022번 도로, 즉 60번 도로를 타고 가다 물금읍과 밀양시 원동면의 경계지역에 다다르면 좌측으로 용화사를 알리는 작은 간판이 있고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595번지, 대웅전 1채와 산신각 1채가 전부다. 그리고 요사채는 현대식으로 지어져 운치가 없다. 용화사라는 이름을 지닌 사찰은 전국적으로 흔한데 대부분 용화사상으로 인해 용화사라는 사찰 이름이 정해진 경우다.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경부선 철도변의 부산시 물금상수도취수장 옆에 위치한 사찰은 요사채, 산신각, 대웅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용화사(龍華寺)내에는 보물 491호로 1968년 12월19일에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125cm, 좌대 높이 95cm, 광배 높이 150cm이다. 원래는 부근의 강 근처 밭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에 법당을 중수하면서 옮겨와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이 불상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춘 완전한 불상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광배의 상부가 약간 파손되었기 때문에 제자리에 올려놓지 못하고 뒤쪽에 그냥 두고 있다. 당당한 어깨, 풍만한 가슴, 양감있는 팔다리의 표현에는 입체감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으나 손이나 목 등, 세부표현에서는 형식화한 면이 엿보인다. 얼굴은 네모지고 튀어나온 이마로 인해 힘이 있으나 가늘게 뜬 눈, 작은 코와 입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시대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옷은 신체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의 표현 역시 간략하게 되어있다. 광배에는 불꽃무늬, 연꽃무늬, 구름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광배 윗부분에는 작은 부처 1구와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에 비천상이 새겨진 경우는 매우 드문 예로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보물 제48호)의 광배와 동일한 형식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는 연꽃무늬와 비천보살상 등이 새겨져 있으며 8각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 옆으로는 계곡이며 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장마가 와서 물이 급격하게 불어도 대웅전은 침범하지 않는다 하니, 충살은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계곡에 자리한 형상이라 바람을 완벽하게 피한 자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산신각이 강한 기맥을 의지하고 자리하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기찻길이다. 과거부터 이곳이 절터였다면 경부선이 생기기 이전에는 이곳에 철길도 없었을 것이고 최근 새로이 만들어진 고속철도에 의한 전기선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물가에 지어진 전형적인 사찰이었을 것이다. 사찰 앞에는 기찻길이 있다. 기찻길은 도로와 달라서 강한 진동이 전달되는 곳이다. 음택지는 물론이고 양택지로도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