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형의 지세에 자리한 송산사지 민락동 285번지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송산사지가 있다. 퇴계원 방향에서 43번 도로를 이용해 의정부로 들어오다 의정부교도서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민락지구 외곽으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도로를 타고 약 4킬로미터 정도를 가면 우측으로 송산사지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용현초등학교를 지나 직진으로 송양초등학교로 가다가 의정부영농종합센터가 보이면 우측으로 가면 있다.이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송양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송산사지는 큰 길에서 불과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송산사는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의 신하로 절개를 지키며 은둔하였던 조견, 원선, 이중인, 김주, 김양남, 유천 등 여섯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이 마을은 본래 조견, 정구, 원선 등 세 사람이 먼저 들어온 마을이라하여 삼귀(三歸)마을이라 했다. 정조 22년(1798) 삼귀서사를 짓고 조견·원선의 위패만 모셨다. 순조 4년(1804)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불렀고, 순조 11년 나머지 네 사람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건물이 전부 헐렸다가 그 이후 옛 터에 위패만을 모시고 삼귀단이라 불렀다. 1964년 후손들이 위패석, 제단석, 병풍석 등을 마련하여 여섯 충신들을 모시고 있다. 송산사지는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소규모 사당 터이나 특이한 북향으로 배치한 유적이다. 송산사지에서 유심히 살펴볼 것은 이 사당이 북향이라는 것이다. 북향의 사당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북향으로 자리한 송산사지에서는 여러 가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남쪽이 서울이고, 이 사당에 모셔진 고려의 신하로 절개를 지킨 신하들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그의 신하들을 보기 싫어 북쪽으로 돌려 지었을 것이라는 것. 둘째 이유는 바로 이곳의 지세 때문이다. 송산사지의 지세는 전형적인 와우형 지세다. 비록 낮기는 하여도 소가 엎드린 지세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곳, 소로 따지면 젖통에 해당하는 곳에 송산사가 자리잡았다. 반대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쪽은 소의 등이 된다. 이와 같은 이치로 살피면 비록 사당이라 하지만 전형적으로 풍수에 의해 터를 닦아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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