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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위 앞의 채운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09-21 조회수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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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화양구곡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고찰 채운사는 1277년 도일선사가 창건하고,1610년에 중창했다고 전한다. 채운사는 화양동9곡의 빼어난 경치 속에 묻혀 있는 고찰로서,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도일선사가 창건하고 수도암이라 하였는데 조선 광해군 2년 혜식선사가 중창하고 채운암이라 개칭하였다. 또한 현 위치에는 효종 4년(1655) 혜일선사가 환장사(煥章寺)를 창건하였다.
그 후 왜병들의 침입으로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고 건너편에 있던 채운암이 1948년 홍수로 매몰되자 그 요사채 일부를 이곳에 옮겨 환장사와 채운암을 합쳐 증축하고 채운사라 이름하였다 전한다.
채운사는 크게 두개의 당우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과 삼성각이 그것이다. 석간수가 나오는 우물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채운사는 온통 둥그런 바위로 둘러쌓여 있다. 대웅전과 삼성각은 물론이고 요사도 바위위에 올려져 있다. 주위는 온통 바위로 둘러쌓여 기도처로서는 그만이다.
채운사 대웅전은 문화재자료다. 청주지(淸州誌) 불우조(佛宇條)에 [욱장암(煜章庵) 재화양동(在華陽洞)<금전채운암(今傳彩雲庵)>]이라 기록되어 있다. 조선 영조조정(朝鮮 英祖朝庭)에 배향된 민진원(閔鎭遠)의 단암만록(丹巖慢錄)에 “숙종조(肅宗朝)의 상신(相臣) 민정중(閔鼎重)이 사신으로 북격에 갔을 때 명나라 활실의 유물(遺物)을 수집하였는데 숭정의종황제(崇禎毅宗皇帝)의 어필(御筆) [비례부동(非禮不動)]의 휘호를 가지고 온 자가 있어 값을 주려고 하였으나 사양하고 가버렸다. 민정중(閔鼎重)이 이 글씨를 가지고 귀국하자 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이 화양동에서 이 글씨를 큰 암벽에 글자를 새기고 그 옆에 중을 모아 암자(庵子)를 이룩하여 그 이름을 욱장사(煜章寺)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괴산군지에 "욱장사 대웅전(煜章寺 大雄殿) 옆에 명나라 신종화후(神宗皇后)의 초상을 봉안한 소전각(小殿閣)이 있으며, 그 옆에 장판각(藏板閣)이 있어 정조(正祖)가 조신(朝臣)에게 명하여 각공(刻工)으로 하여금 조각케 한 [송자대전(宋子大全)], [정서분류(程書分類)] 102권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었다. 또 대웅전 서편에 ´팔음각(八音閣)´ 이라는 것이 있어 이 속에 다듬이돌 모양의 八개의 돌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조선팔도에서 모아 들인 것으로서 두드리면 고저청탁(高低淸濁)의 음이 각각 다른 팔음(八音)의 소리가 났다. <한편 팔음석(八音石)이라고도 함> 그러나 1896년(고종 33)에 국내 각처에 의병이 봉기할 때 일본관헌이 난입하여 불을 지르니 욱장사(煜章寺)는 소실되고 말았다. 이 때 대웅전 3칸만 남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채운암은 본래 화양천 건너편 첨성대 안쪽 계곡에 1277년(고려 충렬왕 3년) 도일선사(道一禪師)가 창건하여 수도암이라 하였고, 그후 1619년(조선 광해군 2년) 혜식선사(慧識禪師)가 중건(重建)하고 채운암(彩雲庵)이라 하였다.
현 위치는 1655년(효종4년) 혜일선사가 절을 짓고 욱장사를 창건하였다. 한말 왜병의 침입으로 대부분 불타고 1948년 대홍수시 채운암이 파괴되자 1949년 그 요사 일부를 현 위치에 이전하고 채운암이라 했다. 중수(重修)시 묵서명(墨書銘)에 "도광육년병술(道光六年丙戌)"(1826)의 상량(上樑) 기록이 발견되었다. 채운암 대웅전은 바위로 둘러쌓여 있으며 바닥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기도 도량이다.
대웅전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된 채운암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내부에 조성연대를 밝혀주는 복장기를 가지고 있는 조선시대 목불이다. 복장기에 의하면 옹정원년계묘(擁正元年癸卯) 5월초에 길쌍계사(吉雙溪寺)에서 조성한 것으로 옹정원년은 조선 경종(景宗) 3년(1723) 이다. 언제부터 채운암에 봉안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후기 불상연구에 한 기준이 되는 귀중한 불상이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두툼한 육계가 표현되었고 상호(相好)는 원만하며, 백호와 눈썹, 눈, 코, 입술 등 전체적인 조각기법이 정제(精製)되었다.
채운암에서 바라보면 여러개의 돌이 떡시루처럼 얹혀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둥근 산정이 전형적인 풍수적인 명당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산정 부근의 바위에는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정면의 바위는 첨성대다. 제5곡인 첨성대는 남쪽 낙양산 기슭에 층암이 겹쳐 대(臺)를 이루고 있다. 경치도 좋을 뿐더러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m이고 대 아래 ‘비례부동’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 있고 그 위에서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한다.
채운암은 전형적인 기도처다. 대웅전 바닥은 물론이고 삼성각의 기초도 천연암반이다. 새로 지은 요사채도 암반위에 올려져있다. 채운사는 거대한 혈자리에 올려져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도명산 정상에서도 확연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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