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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다리가 잘린 정연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08 조회수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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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파주에 자리한 정연의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어 탄현면 법흥리 산 148번지에 있다. 산이라고 번지에 나와 있지만 산이 아니다. 과거에는 산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언덕의 모양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낮은 산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 정연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도로 옆이라 먼지도 피어오르고 있지만 접근성은 좋다. 잔디가 잘 자라있고 묘역은 잘 정리되어 있다. 뒤로 곡장이 있어 과거에는 대단히 관리가 잘 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좌측으로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고 문인석과 무인석이 보인다. 중앙에는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장명등이 있고 뒤로 고려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비석이 보인다.
이 묘는 조선태종(太宗),세종(世宗)때의 문신인 정연(鄭淵 1389~1444)의 묘다. 정연은 조선(朝鮮)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심(仲深), 호는 송곡(松谷)이다. 태종 5년(1405)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지평(持平)에 재직 중 당시 태종의 신임을 받던 영 의정 하륜(河崙)의 비행을 탄핵한 일로 순금사(巡禁司)에 내려져 국문(鞠問)을 받았으나 속죄되어 풀려났다. 정랑(正郞)을 거쳐 세종 2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승진되고, 이후 선공감정(繕工監正) 병조의 참판(參判)과 판서(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사헌부의 관직을 여러차례 맡으면서 바른말을 잘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묘역은 크게 2단으로 이루어 졌는데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와 합장묘다.
봉분의 형태는 하단 전면과 좌우면에 장대석(長臺石)으로 호석(護石)을 둘렀는데 방형에 가까운 장방원형 분(長方圓形墳)이다. 봉분 앞에는 화관석(花冠石) 형태의 묘비 2기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데 좌측이 그의 묘비로 세종 26년(1444)에 건립된 것이고 우측이 부인의 것으로 세종 27년에 건립된 것이다. 묘비 앞에는 상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고, 그 앞으로 장대석을 이용한 계체석이 놓여 있다. 묘역 전방에는 좌우에 문인석 2쌍이 배열되어 있다.
정연의 묘는 어떤 형태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현재의 좌향이 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좌향은 주산의 반대방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좌향이 주산으로 여겨지는 높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은 좌향의 문제이거나 회룡고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단편적인 판단으로는 정연의 묘를 파악할 수 없다. 혈을 바탕으로 하는 묘역에서 좌청룡 우백호는 팔다리와 같다. 주변이 모두 잘리고 집들이 들어서서 용맥의 흐름이 차단되고 끊어졌으며 주변 사격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맥을 측정할 수 없고 형상도 볼 수 없으며 바람의 흐름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상황, 즉 맥이 끊어지고 기맥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면 이장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이전이나 이장이 불가능하거나 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무리 훌륭한 묘역이라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영향이 사라진다. 이미 700여년이나 된 묘역이므로 주변 사격이나 기맥의 손상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후손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국가의 문화재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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