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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새로 지은 봉서정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09 조회수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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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양평방향에서 여주로 가는 도로는 37번 도로다. 영평읍에서 강을 따라 37번 도로를 타고 15킬로 정도를 달리면 우측으로 이포대교가 나타난다. 이포대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88번 도로를 무시하고 약 100미터를 가면 우측으로 산을 향한 작은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를 타고 약 100미터 올라가면 좌측으로 제법 규모가 큰 정자가 나타난다.
곱게 단청을 입힌 아담한 정자다. 본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는 것과 둔촌 선생께서 말년에 이곳에 머물며 조선개국에 일어났던 숨은 일화 등이 작은 간판에 적혀있다.
봉서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복원한 것이기에 문화재적 가치는 크지 않다. 문화재적 가치는 크지 않으나 입지적 가치는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뒤에는 산이고 앞에는 강이 막혀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육로가 발달되지 않은 600년 전의 교통으로는 한강의 수로로 마음만 먹으면 서울을 쉽게 왕래할 수 있는 발달된 교통 이었다.
지금의 이포대교가 없었다면 봉서정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산맥이었을 것이다. 외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지역이었다. 봉서정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 둔촌이 정확하게 어디에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봉서정에 올라 살펴보면 마을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소쿠리나 삼태기 모양이라 폭 싸인 형국이다.
세상이 변했다.
과거의 십승지지는 지금으로서는 십승지지가 될 수 없다. 과거의 십승지지는 물과 바람을 기준으로 한 풍수에 기인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새의 눈은 무시되었다. 그러나 현대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대다. 따라서 과거와 달리 골이 깊다고 해서 죽음을 면하거나 전란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시대의 변화다. 풍수의 이치는 변한 것이 없지만 적용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따르고 있다.
600년 전이라면 아마도 이곳이 십승지지와 같았으리라. 외부인의 눈에 뜨이지 않지만 원한다면 배를 타고 빠르게 한양으로 갈 수 있었다. 둔촌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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