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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 역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09 조회수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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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실생활에서 쉽게 마주하기에 그 가치를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의 문화재가 있다.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서울역사는 1900년 7월 8일 한강철교의 준공과 함께 경인선이 완전히 개통되면서 간선철도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의 시대를 열게한 건물이다.
처음에는 서대문 정거장으로 불리다가 남쪽으로 옮겨오면서 남대문역 이라고 불렸다. 초기 남대문역은 2층 목조 건물로 현재의 서울역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1915년 10월에 역사를 크게 개축하면서 이름도 경성역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웅장한 역사건물의 모태는 1925년 9월에 개축/준공된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새로이 건축된 콘크리트 건축물은 규모는 동경역, 외양은 대판시 중앙공회당, 기능은 핀란드의 헬싱키역과 유사하게 설계했다고 한다. 서울역은 어느 사적과 달리 현재 사용하는 건물이다. 192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25년 준공한 서울역은 행정구역상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번지다.
서울역은 1900년 7월 처음 영업을 시작한 지난 1세기동안 한국철도의 상징이었다. 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시대의 개막과 함께 교통혁명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또한 앞으로 남북철도 연결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할 변함없는 한국철도의 대표역이다.
서울역은 서울특별시 사적 제 2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연면적 6,631㎡의 석재 혼합 벽돌조이며 대지면적 26만 9095㎡. 건물면적 1만 7200㎡이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6월 일본이 조선 및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착공, 25년 9월 준공되었으며 설계는 일본인 스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하였다는 주장과 독일인 C.K라란데가 하였다는 두가지 주장이 있다.

풍수적으로 서울역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다음 많은 것을 말살했지만 풍수지리에 대한 이론도 말살했다. 풍수지리가 미신이라는 주장을 한 사람들이 일본인 이었다. 그리고 무덤을 아무곳에나 써도 된다는 논리를 주장하여 계곡에 공동묘지를 만든 것도 일본인이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풍수는 미신이고 공동묘지를 아무곳에나 만드는그릇된 전통이 생겼다.
일본은 전국이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명당이 많지 않다. 화산 용암이 흐르며 혈을 뭉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 같은 이치를 알고 있던 일본인들은 한국의 꼬장꼬장한 국민성을 누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단이 필요했다. 그 하나가 우리 민족의 가슴에 깊숙하게 깔려있는 의식을 제압하는 것으로 풍수지리를 이용했다. 즉 금수강산 곳곳에 쇠말뚝이나 동을 녹여 부어 기맥을 억압했다고 소문을 내어 우리 민족정기를 더럽히거나 실의에 빠지게 했고, 고종의 묘와 순종의 묘를 망지에 쓰도록 했다.
아직도 일부 풍수가들과 이 당시 일본인들에게 빌붙었던 이들이 창피한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조상이 고종의 묘를 잡았다거나 순종의 묘를 잡았다고 큰소리를 치고 어줍잖은 소리를 하고 있다. 참으로 더러운 자들이다.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어줍잖은 주장을 하고 자신들이 유명한 풍수인이라고 떠들고 고개를 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최근 민족정기를 세우자는 의미에서 친일파를 색출하고 단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들도 역시 단죄되어야 하고 다시는 얼치기 풍수로 나서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이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도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곳곳의 산맥을 끊어 인물이 나지 못하게 했으며 풍수적으로 좋은 물건이나 유물을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문화재가 일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런 일본이 한국에서 배워간 것이 양택이다. 물론 그 전에도 일본은 양택을 발전시켰다. 일본은 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화장을 하고 산소는 겨우 3%정도만 있다. 그런 일본이 극대화시키며 발전시킨 것이 바로 양택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에 남아있는 서울역과 같은 건물이다.

서울역은 효율적인 양택의 전형이다. 양택의 기본은 배산임수, 전저후고, 전착후관이라는 삼요소 외에 모양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문과 창, 혹은 벽이 밖으로 튀어나온 형식의 진취적인 설계다. 서울역은 이러한 이치를 충실하게 지킨 건물인 것이다.
먼저 출입구를 살펴보면 뭔가 범상치 않아보이는데 바로 돌출된 출입구라는 것이다. 건물의 대문이 안으로 함몰되면 위축되니 반대로 진취적이고 공격적으로 돌출되어야 한다는 이치를 확연하게 지키는 것이다. 살펴보면 모든 출입구는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더구나 계단으로 이루어져 전저후고의 법칙도 지키고있다.
좀더 물러서 정면을 바라보면 서울역 지붕인 돔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양택에서 돔형식의 지붕은 천기를 가장 잘 보존하는 구조물이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의 경우도 지붕이 돔형식이다. 거의 모든것이 잘 남아있는 서울역 이지만 역시 안타까운 점은 있다. 정말 아름다운 돔을 내부에서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서울역이 폭격을 맞았다. 안타깝게도 폭탄이 돔을 강타해버렸다. 그래서 바로 복원하기에 이르렀는데 기술이 없어서인지, 전후복구 때문에 재력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돔에 남아있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까지는 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그냥 막혀있다. 풍수에서 돔은 하늘의 기를 저장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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