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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의 기심(欺心)이 느껴지는 서울시청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09 조회수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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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영삼 정부는 일제잔재인 조선총독부 청사, 옛날의 중앙청 청사를 해체하고 경복궁을 복원했다. 이는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과 민족을 생각하는 학자들의 모임에서 김영삼 정부가 행한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그런데 일제잔재의 일부인 서울시청 청사는 왜 해체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울시청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2006년 이후 새로운 청사가 지어진다고 하지만 시청사 건물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용도나 해체에 대한 조사는 없는 듯하다. 지금도 일본 관광객들이 서울 청사를 보며 자신들의 조상들이 이곳에서 그들이 말하는 속칭“조센징”을 지배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얼마전 방송에서는 이곳을 소개하는 관광 안내원이 국가와 민족을 비하하고 스스로 비굴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아울러 민비 시해를 일러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설명하기를 “건방진 여자가......”라고 표현했다고 하니 기가 찬다.
단순히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조선총독부 건물뿐만이 아니라 서울시청 청사도 일본이 남긴 침략의 흔적이다. 서울시청 청사의 건물형체가 일본의 “본(本)”자에 해당한다는 학자의 주장도 있고, 또한 친일파를 규명해야 된다는 여론도 심하게 들끓었었다. 건물이라 다르지 않다.

지금의 서울시 청사가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 때 무기를 제조하던 군기시(軍器寺)라는 관청이 있던 자리였다. 군기시의 별명이 무고(武庫)였던 까닭에 군기시 앞에 있던 다리인 군기시교(軍器寺橋)의 별명도 무교(武橋)가 되었다. 무교 앞에서는 대역부도 죄인이 처형되기도 하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천이 복개되어 더 이상 무교는 존재하지 않고 무교동이라는 지명만 남아 전해질 뿐이다.
바로 이 곳에 합방 이후 경성부 청사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22년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암정(岩井) 건축과장과 장세(長笹)기사가 설계한 경성부 청사는 800평 정도의 4층 건물로 지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석재로서 마감한 건물이다.
일제는 경성부 청사를 지을 때 본(本)자를 의식하고 지었다. 그러나 경성부 청사를 굳이 이 자리에 지으려고 했던 배경에는 덕수궁의 기를 꺾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 광장은 3.1운동 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조선인들의 고종황제에 대한 숭상 의식과 독립 의식의 상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제국 시절 고종은 대한문을 중심으로 방사선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백성과 민의(民意)가 모이게 모여들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옛 육조거리, 즉 지금의 세종로에서 남대문으로 곧장 연결되는 새로운 대로인 태평로를 조성하여 일본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도로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태평로를 중심으로 대한문을 위압하는 웅대한 건물로서 경성부 청사를 지었던 것이다.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성되면서 태평로에는 경성부 청사가 들어섰다. 이로써 일제가 의도하는 서울의 새로운 도심축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옛 부민관(府民館), 즉 현재의 서울시 의회 건물도 일본의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35년 태평로변에 만들어진 이 건물을 들여다보면 건물 일부를 탑식으로 높여 권위적인 느낌을 주면서 역시 덕수궁을 압도하고 있다. 일본은 건물을 지으며 당시 조선의 긍지이며 자존심, 그리고 백성의 구심점이었던 황실을 철저하게 억압하였던 것이다.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명백해지는 것은 하나둘이 아니다. 청와대 뒷산은 풍수지리상 대(大)자를 뜻한다. 따라서 일본은 과거 중앙청이라고 불렀던 건물을 일(日)자로 지었고 시청 건물을 본(本)자로 지었다. 따라서 서울 한복판에 대일본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친일파들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올바른 역사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중앙청이 일본에서 “일(日)”의 건물 형태였다면, 서울시청은 “본(本)”자의 건물 형태다. 이미 초음파를 이용한 검사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왜인들이 우리의 심장부에 그들의 의도를 남기는 건물인 것이다. 시청은 전혀 의미 없는 건물이다. 서울 중심부에 4층 건물은 부지의 용도에서도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는 서울시청 건물은 파괴되어야 하고, 그 곳에는 우리 고유의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세워져야 한다.

올바른 민족 의식을 가진 이들이 참여하여 서울시청 건물의 역사적 가치의 허구성이 논의되어야 한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들은 과거의 응징이 아니라, 희망적인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일본의 잔재도 역사이므로 남겨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본인의 항문이나 핥으며 쫓아 다니던 친일파나 그들의 사관(史觀)을 이어받은 쓸개 빠진 견자(犬子)들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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