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를 찾아서

  • 관산일정
  • 관산기
  • 포토갤러리
  • 관산자료실

관산기

제목 기맥을 타고 있는 신창향교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12 조회수 557
첨부파일
내용
신창향교는 인취사 부근에 있다. 신창면 읍내리에서 인취사를 찾아가는 방향과 동일하다. 신창초등학교 길 입구에는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신창척화비(新昌斥和碑)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다. 1969년 동리 주민들이 신창초등학교 교정에 옮겨 놓았다가 1987년에 원위치인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으로 충청남도 내에는 홍성과 이곳에만 있다.
이 비는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병인, 신미양요를 겪자 쇄국정책을 더욱 굳게 하면서 척양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서울 종로와 지방각처에 척화비를 세웠는데 비에는 「양이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의인데, 화의를 주장함은 매국이다」라고 쓰여 있다.

홍살문을 지나 학교앞에 20여개의 비석이 있다. 이곳이 비석거리다. 김육비가 이곳에 있다. 김육비(金堉碑)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로 지정되었고 현제 세워진 곳의 주소는 충남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200번지다.
이 비는 조선 현종 원년에 김육이 대동법을 주창, 시행한 것을 송덕하기 위해 세운 비다. 김육은 1580년에서 1658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백후, 호는 잠곡이다 선조 3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평. 충청도. 관찰사. 대사성. 도승지.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등을 거쳤다.

신창초등학교 운동장 뒤 숲으로 둘러싸인 고건축이 보인다. 신창 향교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된 신창향교(新昌鄕校)는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320-3번지에 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으나 운동장과의 사이에 몇기의 비석이 있다.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 때 건립했다고 하나 기록이 없으며 고종9년(1892)에 관학 강화책에 따라 왕경열이 신창현감으로 있으면서 도고산에 있었던「진주사」라는 사찰을 이건하여 향교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현재도 중국의 사성오현과 이철, 그리고 국내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건물배치를 살펴보면,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외문과 내삼문이 있으며 동·서 양재와 명륜당과 대성전이 구성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다.
향교는 양택의 범주에서 살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고 살림집과는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다른 기준도 구비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택 삼요와 기맥의 유무다.
학성산의 한 줄기가 뻗어나와 향교 방향으로 내려온다. 크게 만곡하여 뻗어온 기맥은 향교 100여미터 후방에서 두개의 지각으로 갈라져 하나의 지각은 신창초등학교로 뻗고 다른 지각은 향교를 등에 지고 있다. 신창 초등학교와 향교가 각각 기맥을 타고 있다. 수학을 하는 공간 두곳이 기맥을 타고 있으니 대단하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