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소재)는 삼국시대 초기 김해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와『동국여지승람 하동지』등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태어 났으며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기원전 5세기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10남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 석(錫) 왕자와 삼남 명(明) 왕자는 모후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왕자는 출가하여 허황옥의 오빠인 인도스님 장유보옥(長遊寶玉)선사를 따라 처음에는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 사천 와룡산 등를 거쳐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더욱 정진, 수로왕 62년(서기103년) 음력8월 15일 모두 생불이 되었다. 이들 일곱왕자들인 혜진(慧眞), 각초(覺初), 지감(智鑑), 등연(等演), 주순(柱淳) , 정영(淨英), 계영(戒英)은 성불한 후 각각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불리었다. 일곱 왕자의 성불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여 국력을 기울여 그곳에 큰 절을 짓고 일곱 부처가 탄생한 곳이라 해서 칠불사(七佛寺)라 불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372년) 보다 약 270여년 앞선 기록이다.『372년 북방전래설』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임에 반해 이곳은 가락국이 바다를 통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 들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 이와 같은 창건 설화를 지닌 칠불사는 종래의 북방 불교 전래설과는 또다른 남방불교 전래설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소 20여분 이상의 스님이 기거하고 하안거 중에는 30여분 이상의 스님이 정진 하기 때문에 아자방 내부와 부휴선사의 부도는 참배할 수 없다. 칠불사하면 아자방(亞字房)을 떠올릴 만큼 아자방은 유명한데 신라 효공왕(孝恭王 897∼911)때 김해에서 온 담공(曇空)선사가 선방인 벽안당(碧眼堂) 건물을 아자(亞字)형으로 구들을 놓았는데 초기에는 한 번 불을 때면 석달 이상 따뜻했다고 한다. 이 아자방은 이중 온돌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방안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쪽의 높은 곳은 좌선처(坐禪處)이고 십자(十字)형으로 된 낮은 곳은 좌선하다가 다리를 푸는 경행처(輕行處)다. 이 아자방은 중국 당나라에 까지 알려 졌으며 이중구조의 이 온돌은 수평인 곳이나 수직인 곳, 높이 있는 좌선처나 낮은 경행처 모두 똑 같은 온도를 유지하여 탁월한 과학성을 자랑하고 있어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퇴락한 가람을 서산· 부휴선사가 중수(重修)하였으며 서기 1800년에 보광전 약사전 등 십여동의 건물이 실화(失火)로 전소되었으나 금담, 대은 두 율사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1월 지리산 공비토벌 때 국군의 방화로 아자방을 비롯한 대가람이 모두 불타 버렸다. 그 후 30년 가까이 잡초만 무성한 폐허로 버려져 있다가 제월통광(霽月通光) 선사가 1978년 부터 20여년에 걸쳐 대작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80의 나이가 넘으신 이곳 대덕의 말씀에 의하면 공비토벌 당시 건물은 다 타버려 구들만 남은 것을 스레트 비슷한 재료로 지붕을 덮어 이곳에서 참선수행을 했다고 한다. 애석한 것은 현재의 아자방은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된 것이라 하니 안타까을 뿐이다. 원래의 모습은 부엌이 있는 공간이 한단계 아래인 구조였다 한다.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저술한 『옥룡자결(玉龍子訣)』을 보면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백리 가면 와우형(臥牛形)의 명지가 있는데 이곳에 서 집을 지으면 부(富)는 중국의 석숭 못지 않고 백자천손(百子千孫)이 번창할 것이며 기도처로 삼으면 무수인(無數人)이 득도할 것"이란 내용을 접할 수 있는데 예로부터 이르기를 음택으로는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이 으뜸이고 양택으로는 지리산 칠불암이 제일이라 했다.
지리산 반야봉(해발 1,732m)의 거대한 혈맥이 남쪽으로 용트림하여 40여리를 뻗어 내린 해발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의 지세(地勢)는 칠불사에서 피아골 연곡사로 걸어서 넘어가는 당재에서 바라보면 그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예로부터 지리산(智異山)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일만권속을 거느리고 상주(常住) 한다는 곳으로서 이 산의 명칭이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유래되었다. 즉 지리산이라는 이름자체가 불국토임을 나타내는 단어인 셈이다.
지리산은 상봉인 천왕봉(1,915m)과 주봉인 반야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문수보살의 대지혜를 의미하는 반야봉을 주봉으로 하는 칠불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수신앙 중심지로서 실제 등산지도를 펴고 대각선을 그어 보면 지리산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문수보살 기도처가 많다고는 하나 전설적으로 문수보살이 현신한 곳은 오대산 월정사와 이곳 지리산 칠불사를 으뜸으로 친다. 칠불사(칠불암에서 1967년 칠불사로 명칭이 바뀜)는 생문수도량(生文殊道場)이라 하여 기도·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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