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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태영의 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16 조회수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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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의정부시(議政府市)라는 지명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 건국초, 태조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하던 중 이곳에서 정사를 논의하여 그 당시 최고의 의결기관인 의정부를 지명화한 역사적인 배경을 지닌 곳이다.
태조가 의정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조정대신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사를 논의하는 한편, 태상왕의 윤허를 받았다고 하여 조선시대 최고 관청의 명칭을 따서 의정부라 했다.

의정부 초입에 건국 초기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咸台永 1873∼1964)의 묘가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 종교인으로 유명한 함태영은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생이다.
1952년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수여되었다.

함태영 부통령의 묘는 자일동에 있다.
명당과는 인연이 없어보이는 묘다. 명당이란 음택에서 혈을 말하고 혈은 사상을 갖추어야 한다. 사상이란 혈의 증거인 것이다. 이 사상을 갖추려면 마치 덩어리가 붙은 것처럼 융기한 흔적이 있어야 하건만 함 부통령의 묘는 그야말로 동차서예의 전형적인 모양이다. 혈의 증거로 볼 수 있는 어떤 모습도 없다. 노년기 산을 밀어버리고 자리를 잡은 모습인데 지나치게 넓고 퍼진 산에는 혈이 응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뒤가 펑퍼짐하고 넓게 들어오니 약룡이다.
천리내룡을 살피지 말고 입수 위부분 3절을 보라고 했으나 입수 위를 볼 필요조차 없다.

기맥을 따라 불과 50여미터를 올라가니 묘가 있다. 비문에 쓰여진 이름은 함우택이다.
함태영의 부친 함우택(遇澤)은 서당을 차려 훈장을 하였고 작명 관상 풍수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김제 만경 일대에서는 함학자나 함풍수 함지사(地師)라 불렸고 50여살에 전라좌수영 도시무과에 합격한 후에는 함의관(議官)이라 불렸다.
아마도 함우택의 묘는 이후 옮겨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함우택이라는 분은 나름대로 풍수도 배운 모양인데 지금 모셔진 자리는 바람을 맞는 좋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혹시 합곡혈로 인식하고 썼을지도 모른다. 즉 두개의 지각이 갈라진 자리에 묘를 썼으니 합곡혈이나 와혈이 아니라면 쓸수 없는 자리다. 그러나 합곡혈이라면 앞을 막아주는 대(帶)가 있어야 혈이다. 이 합곡혈의 대표격인 묘역은 전라도 변산반도에 있는 인촌가문의 묘역이다.
또다른 유사한 형태의 혈상(穴象)은 와혈(窩穴)이다. 그러나 와혈의 특징은 두개의 지각중 하나는 작고 하나는 길며 안으로 오무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마치 대추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유혈상이 나타나 두드러져야 하고 전순이 나와 두개의 지각 사이에 두툼하게 밀려나와야 한다. 함우택 선생의 묘역은 합곡혈이나 와혈과는 거리가 멀고 대나 전순이 없다. 계곡풍을 받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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