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는 문화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일본인의 왜곡된 주장을 받아들여 풍수를 미신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풍수의 이론중에는 비보풍수라는 것이 있다. 비보풍수라는 것은 풍수의 이념이나 풍수의 요건, 풍수의 배치를 이용해 피폐함과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마을이나, 양택, 음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사용되었다. 양택이나 마을의 경우 장승을 세우거나 돌을 세우고, 돌무더기를 만든 행위, 나무를 심고 노거수를 숭상하는 행위등이 모두 비보풍수에 해당된다. 배척도 받고 미신이라는억측도 들었지만 이 모든 행위는 우리 민족의 풍속인 것이다. 비보풍수에는 단순히 일정한 사물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나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장승은 물론 노거수도 비보풍수에 이용되었고 사람의 손으로 깎아 혼을 불어넣은 물체, 혹은 상징성을 지닌 물건이나 돌도 비보풍수에 이용되었다.
병산리 돌거북은 길가에 있다.마을 사람들은 이 돌거북이 마을의 보배라고 한다. 누군가 10억에 팔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문화를 이해한다면 그런 억측은 어울리지 않는다. 양평군에서 퇴촌으로 이어지는 88번 도로를 이용해 달려가다 강상면 병산1리에 다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 가기 바로 전 도로옆에 돌거북이 있다.
이 돌거북상은 고려초기(高麗初期)의 석물(石物)로서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삼한통합(三韓統合)시에 공을 세운 이 고장 출신 함규(咸規)장군의 전승(戰勝)을 기리고 이 고장에 수호(守護)를 위하여 백봉령(白峰嶺)에 승전비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오랜 세월동안 강산면 병산리 산166번지 백병산(白屛山) 왜목터에 있다가 1986년 어느 도굴범에 의하여 도난(盜難)당한 것을 회수하여 군민회관(郡民會館)광장에 옮겨 놓은 것이다. 돌거북은 화강암(花崗岩)에 조각(彫刻)된 높이 1.24미터 길이 2미터폭 1.4미터다. 이 돌거북상을 옮긴 이후로 그곳 병산리 주민의 병폐가 발생한다 하여 1997년 다시 강상면 병산리로 옮겨 놓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