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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완장군 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0-25 조회수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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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용인시 향토유적 51호로 지정된 이완장군 묘는 용인시 고기동 산20-1번지에 있으며 덕수이씨 강민공파종회 소유다. 수지에서 고기동으로 들어간 낙생 저수지 끝에 있다.
입구에 절로 오르는 표식이 있고 산 아래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에서 약 400 미터를 들어가면 묘역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고 작은 팻말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면 능선상에 있다.

이완(李莞)은 조선시대의 무신으로 자는 열보(悅甫) 관은 덕수(德水) 부친은 참판에 증직된 의신(義臣)이며 모친은 세온(世溫)의 딸인 진주강씨로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다. 이순신 장군이 죽음에 이르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하였으니, 역사적으로 이순신장군의 서거를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마지박 전투에서 숙부였던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종군하여 선조31년(1598) 노량해전 에서는 이순신이 전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아군을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의주부윤으로 있던 인조 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압록강을 건너 내습해 온 적군을 맞아 분전하다가 대세가 기울자 병기고에 불을 지른 후 사촌동생인 신(藎)과 함께 분사(焚死)하였다.
숙종18년(1692)강민공(剛愍公)으로 시호되고 정려문이 내려졌으며 (숙종 30년(1704) 용인시 고기동(손기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정려를 표하였다. 정려각은 묘역이 있는 산자락 끝에 세워져 있다.
묘소는 정려각이 위치한 곳 뒤쪽으로 400미터정도 가면 우측 산책로가 나오고 산책로길을 따라 200미터정도 더 가면 있다.

묘는 지극히 평범하고 수리를 반복했는지 엣날의 묘와는전혀 다르다. 최근에 사용하는 묘제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묘역을 받치는 주산은 비스듬한 경사를 가지고 제법 먼거리를 달려왔다. 그리고 묘역 앞은 과협처로 굴곡이다. 굴곡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앞으로 뻗은 지각이 다시 일기일복하기 까지는 약 100미터에 이른다. 일기일복이 지나치게 길어 약 200미터를 넘으니 지나치게 길다.
묘역 상부에 올라 바라보면 기울기가 심하여 비혈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좌우의 균형은 물론이고 기울기도 어그러진 편룡임을 알 수 있다. 편룡은 어떤 경우에도 묘역을 조성하지 말라 하였다.불가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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