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는 지대하고 오래되었다. 각각의 성씨는 시조로 조상의 묘를 모시고, 묘가 실전되어 찾지 못하거나 훼손되면 단(壇)을 모신다. 한국의 성씨는 역사를 이룬 하나의 작은 문화다. 해주오씨도 다르지 않다.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 중앙에 있다. 고려 태조가 본군의 남쪽이 대해(大海)에 임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로 개명하였다.
수지와 죽전을 거쳐 경기도 광주로 이어지는 43번 도로를 타고 이동하면 [오산리]가 있다.출구를 통해 43번 도로를 나서면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해주오씨 선영을 알리는 문화재 표식이 있다. 마을입구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들어가면 좌측으로 커다란 고택이 나타난다. 이곳은 해주오씨의 재실이다. 재실을 정면에서 보아 좌측으로 높은 언덕위에 삼문이 보인다. 바로 시조단이다. 삼문을 지나 올라가면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르지 않은 시조 오인유의 신도비가 있고 다시 담으로 가려진 공간이 나타난다. 이 공간속으로 들어가면 시조와 조상들의 단을 알리는 비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수적으로 보았을 때, 단은 지리적으로나 풍수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음택에서 중요한 것은 효도의 마음과 함께, 조상숭배는 물론이요 유골에 좋은 기를 받는 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단은 조상의 유골이 없으므로 장소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상을 모신다는 이념만이 중요하다. 시조의 단은 후손들을 모으는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해주오씨 시조단은 많은 작업 과정으로 형상이 변했다. 많이 넓어진 것은 산능선을 밀어 넓혔기 때문이다. 주산과 내룡의 흐름을 보았을 때, 제법 넓은 주룡이었고 기복도 있었다. 시조단의 위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는 물론이고 전저후고(前低後高)와 전착후관(前窄後貫)까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는 이 터가 매우 수려한 양택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수구(水口)가 열려 있으므로, 양태지로 사용할 경우 비보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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