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곶면 초원지 2리 미륵당 고개에서 서쪽 50m 지점에 “미륵당”이 있다. 큰 길에서 약 100여미터 들어간 곳에 시멘트 블록으로 짓고 스레트로 지붕을 씌운 작은 창고같은 집이 미륵당이다. 이 마을은 광주이씨 집성촌으로 1820년경, 옛 노인들이 우연히 산에서 미륵당바위를 발견하고 그것의 신비로움을 마을의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였으나 모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이 지역 유지 이석윤씨의 꿈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너는 미륵당돌 부처를 잘 모시면 소원성취 할 것이다.”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이석윤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동생 석명과 함께 부처의 하단부와 상단부를 모셔 놓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밤에 어제의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너는 어찌 부처의 머리를 잊어 버렸느냐, 바로 옆으로 50발자국만 가서 파면 돌부처의 머리가 있을 것이다. 그 돌부처를 잘 모시 도록 하여라.”라고 말해, 다음날 아침 노인이 말한 곳에서 돌부처 머리를 찾아내 잘 모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0년 가현리 750번지 거주 이인두씨가 딸만 셋을 두고 아들이 없어 늘 근심에 쌓여 아들을 소원하던 차에 이 미륵당에서 동북쪽으로 100m 떨어진 옹달샘에서 목욕재계하고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정화수를 떠놓고 보름동안 지성을 드린 후 옥동자를 낳아 충향이라 했고, 2년 후 또 낳아 효향이라 했다.그리하여 이인두씨는 그후 정월대보름에 이미륵당에서 지성을 드리고 이 집을 잘 관리하여 왔다고 한다. 한편 1920년경에는 이 마을 이하범이란 짓궂은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 사나이 형제가 돌부처의 앞가슴을 돌로 무수히 때리고 나서 그날 밤 자고 일어나니 그들의 앞가슴이 부어올라 3일간 고생을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의 미륵당은 높은 건물에 위압당하고 있어 안쓰럽다. 옛날 미륵당은 초가였는데 풍우에 퇴락해 1981년 9월 광주이씨 문중에서 1.5평 블록벽채에 슬레이트를 얹은 건물로 신축해서 현재 보존되고 있다. 미륵당은 풍수적 의미보다는 주술적 의미가 강해 보인다. 미륵이란 불교와도 관련이 있다. 그보다 전국적으로 미륵당이라는 곳은 높은 고개마루에 자리하거나 바위 앞에 놓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장승이나 굿당과 같은 영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토속적인 색채와 불교와의 융합은 물론이고 풍수적으로 진압풍수와 비보풍수의 연관성은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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