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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인지 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1-09 조회수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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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인지 묘
충북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 산144번지에 있다. 정인지 선생의 묘는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보존이 잘된 편이다.

정인지는 역사적으로 혁혁한 이름을 남긴 조선 초기 문신이다.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본관은 하동(河東). 권우(權遇)의 문인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우람하게 느껴지는 산이다. 언뜻 보면 인공으로 쌓은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불거져 나온 산자락 끝이다.
주차장 좌측으로는 정자각이 있다.산 아래 작은 신도비가 있는데 비교적 마모가 덜하다.
산능선에 올라보면 2개의 묘가 기맥을 타고 있다.

앞쪽에 있는 묘는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폭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姜希孟)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文官石)과 망주석(望柱石)이 서 있다.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전주이씨의 묘 뒤를 보니 입수부위가 깊이 파고들어간 형태다. 전형적인 비룡입수인데 지나치게 큰 입수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지각의 생성과 용의 흐름을 살펴보니 취기입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입수부위에서 살펴보니 우측으로 지각이 발달하여 유혈의 변형인 혈판이 하나 형성되어 있으나 묘역을 정하지 않았다. 그 아래쪽으로 전주이씨의 묘가 있는데 유혈의 혈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변형된 유혈이라는 잉혈처럼 좌선이 부풀어 있는데 잉혈은 아니다. 작은 지각이 뻗어나간 형상으로 보아 잉혈처럼 보이지만 이는 좌선(左旋)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이 있으면 과도 있는 법이다. 정인지가 죽자 무덤을 세 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가문과 인근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
정인지의 능력과 업적은 매우 뛰어나나 일부에서는 정인지(鄭麟趾)하면 충신으로는 치지 않는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조카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임금 자리를 뺏어 세조(稅祖)가 될 때, 그 때 사육신(死六臣)들처럼 불사이군(不事二君)하지 않고 세조 편을 들어 정승까지 지냈다는 이유다.

정인지의 묘가 있는 마을은 반능이다. 옛날에 정승을 지낸 사람의 묘는 ´능(陵)´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정인지의 묘는 ´반릉(盤陵)´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정인지는 세조 편을 들어 정승까지 했지만 사람을 모함해서 죽인 일은 없다. 세조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정인지는 사람을 죽이지 않은 정난공신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조에게 편든 사람한테 원한이 진 사람도 많고, 또 세상이 뒤집히면 충신이 역적되고, 역적이 충신이 되는 세상이기에 정인지는 죽음의 순간에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 묘가 패일지 모르니 세 개를 써라."
이 유언은 받아들여져 후인들이 묘를 세 개로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간혹 전해지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특히 정난공신이나 사람을 많이 죽인 고위직 관료들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과 유사하다. 후인들은 3개의 묘를 조성했지만 어느 것이 진정한 묘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정인지의 묘는 괴산 불정리의 묘가 정설로 알려져 있고 후손들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정인지의 묘를 살피기 위해 입수방향인 전주이씨의 묘 앞에서 바라보면 조금 이상한 모습이 눈에 뜨인다. 좌측과 우측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좌선방향은 파고 들어온 것으로 지현자를 이루고 있어 마치 옆구리를 파고 든 형상이고 우선은 튀어나가 지각처럼 돌출되었다. 자세히 보면 지각의 형상이나 둥굴게 잘린 모습이 전형적인 혈판의 전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경우 몇가지 적용의 예를 들어 혈판을 조명하는데 이기와 형기가 다르겠지만 형기풍수에서는 이 경우 잉혈로 판단한다. 잉혈은 괴혈의 일종으로 파악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혈의 변형이다. 따라서 옛 풍수사들은 잉혈을 유혈로 보았다. 문제는 정확한 혈심인데 혈심은 입수와 전순의 사이에 있다.
용맥상으로 보면 편산에는 혈이 생기지 않는 법이므로 용맥상에는 혈이 없다. 정인지의 묘는 좌향이 용맥상에 있으므로 불가장지에 해당하는 기맥상에 묘를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당판이 보인다. 즉 우선으로 튀어나간 당판이다.

좌우가 기울거나 고저가 불규칙한 편산에서 혈이 생기는 경우는 다른 방향으로 지각이 나가 발달하거나 혈판이 한 옆으로 붙은 경우인데 이 경우는 오로지 잉혈과 지각이 뻗어나가 다른 지각에 맺히는 유혈이다. 이 경우 현재의 묘역에서 우선으로 당판이 생긴 잉혈이므로 정인지의 묘는 향을 바꾸었어야 했다.이기풍수의 경우 득수와 파구의 방향을 보고 입수룡을 파악해 좌향을 정하는 팔십팔향법을 적용한다. 이 경우는 좌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패철에 의한 것으로서 기맥 수련자나 형상풍수, 형기풍수, 그리고 전통 풍수에 의하면 좌향은 입수와 전순을 잇는 선에 있고 기맥은 룡을 따라 흐르며 입수에서 전순을 따라 흐르므로 좌향은 전순을 향해 정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정인지 묘하의 둥굴게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다. 같은 용맥상에 자리한 이 마지막의 둥근 모양의 사격은 사람이 쌓은 것이 아니다. 혹자는 인작으로 만들어진 사격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하는데 예로부터 안산이 높으면 말자가 불효한다고 했으니 일부러 불효자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맥을 측정하면 이 앞쪽의 둥근 사격이 정돌취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좌우를 살피면 유난히 발달한 지각 형태의 모습이 불룩하게 발달해 있는데 이는 연익(燕翼)이다. 즉 정돌취기 입수에 선익이 발달한 연익이다. 그렇다면 혈판이 어디에 조성되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정인지 묘의 경우는 아직도 2개의 혈판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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