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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동서원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1-14 조회수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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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도동리는 대구 광역시에서 가장 서쪽에 치우친 곳이다. 이곳에 서원이 있고 서원 전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름도 유명한 도동서원이 바로 그곳인데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다.

논공단지에서 강하게 흘러오던 낙동강이 크게 회류한 지점에 있는 서원은 한국 서원의 수문장 격인 역할을 하고 있다.현풍에서 도동리로 넘어가는 고개 다람재에 올라서면 소수서원(紹修書院), 옥산서원(玉山書院), 도산서원(陶山書院), 병산서원(屛山書院)과 함께 5대서원의 하나로 꼽힌다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 한눈에 들어 온다.

다람재 정상에서 바라보면 오른편으로는 멀리 산줄기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왼편으로는 다복솔 가득한 대미산 자락이 보인다. 이 숲이 끝나는 산진처에 고요한 모습을 보이는 고택이 보인다. 조선조 유학사(儒學史)에 큰 획을 그은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다.

도동서원은 조선 5현의 첫머리(首賢)에 차지하는 문경공(文敬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선생의 도학을 계승하기 위하여,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 선생의 주도로 유림의 협조를 받아 세워졌다.
1607년 선조 대왕 40년에 도동서원으로 이름지은 현판을 하사받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2년(1865) 흥선 대원군이 서원을 정리할 때에도 문을 닫지 않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64년 선조 원년(1568)에 비슬산의 두 골짜기 물이 합쳐지는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 초곡천 산기슭에 세운 쌍계서원(雙溪書院)이 시초다. 선조 6년(1573) 임금이 서원에 필요한 현판과 책을 하사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때 왜병의 방화로 불타고 말았다. 그 후 선조 38년(1605)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워 보로동서원(甫勞洞書院)이라 하였다. 2년후 나라에서 공자의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으로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이름지어 사액하여, 마을 이름도 도동리라 고쳐 불렀다.

서원을 들어서 바라보면 안산이며 앞을 가로막은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넘실거리는 푸른 강물과 강 건너 고령군 개진면의 넓은 들판을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는 누각에 올라야 한다. 2층 구조로 지어진 수월루(水月樓)는 정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치를 살피기는 안성맞춤이다.

전통과 서원이 지닌 역사성으로 도동서원의 의의는 남다른데, 듬직한 산이 뒤를 받쳐주고 낙동강이 앞으로 흘러 시야를 훤히 튀워주는 배산임수 배치는 전통적이고도 가장 이상적이다.서원을 이루는 건물은 전체적으로 간결, 소박하며 아름다운 토담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암키와와 수막새을 엇갈리게 끼워 장식한 토담은 보기드문 걸작으로 우리나라 재래토담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담은 풍수의 장풍(藏風)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건물의 배치는 주된 건물을 중심으로 삼아 좌우로 배치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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