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유형문화재 제 4호인 대정향교가 자리한 곳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3126번지다. 대정읍에서 삼방산으로 가는 도중에 죄회전하여 들어가는 산아래에 있다.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송악산을 바라보면서 자리해 있는 대정향교는 읍성이 있던 보성리로부터 4㎞ 남짓 떨어져 있다. 보통 제주도의 안내에서 제외되는 곳으로 관광지로 보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이 대정향교는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향교이고 풍수적으로도 배울것이 적지 않다. 1 408년(태종 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여 대정현 성내에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북성(北城)안에 있었으나 중간에 동문 밖으로 옮겼고, 다시 서성(西城)안으로 옮겼으나 1653년(효종 41) 이원진(李元鎭) 목사가 현재의 위치인 단산(簞山) 아랫족으로 이건(移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뒤 대성전(大成殿)은 1669년(현종 10), 1688(숙종 14), 1752년(영조 28), 1835년(헌종 1)에 중수하였고, 명륜당(明倫堂)은 1772년(영조 48)에 중건하였다. 이렇듯 여러 차례의 중·개축을 거친 뒤, 1993년에는 남제주군에서 대성전을 다시 중수하였다.
명륜당(明倫堂)이라는 액자는 순조 때 변경붕(邊景鵬) 현감이 주자필(朱子筆)을 본받아 게시하였고, 대정현 훈장(訓長) 강사공(姜師孔)은 이 고장에 유배왔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에게 요청하여 의문당(疑問堂)이라는 액자를 받아 게시하였다. 현재 대정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의문당 액자를 살펴보면, 『도광이십육년병오(헌종 12, 1846)십일월 일 진주후인강사공 청적소전참판김공정희 제액근게 각자향원오재복 공자탄진이사칠구년 무진춘재게(道光二十六年丙午十一月 日 晋州後人姜師孔 請謫所前參判金公正喜 題額謹揭 刻字鄕員吳在福 孔子誕辰二四七九年 戊辰春再揭)』라 하였으므로, 각자(刻字)는 향원(鄕員) 오재복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강사공은 1811년(순조 11)은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소나무 세 그루와 팽나무 다섯 그루를 대성전 뜰에 심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자연 재해와 관리 소홀로 인하여 거의 고사하고 말았다.
경내에는 남쪽에 명륜당이 북향하여 자리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삼문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대정향교에 편액에 쓰여진 “의문당”이란 글씨체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정향교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단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삼방산이다. 단산은 달리 박쥐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생긴 모양이 박쥐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정향교에서 보면 박쥐산은 박쥐의 모양을 지닌 것은 아니다. 비록 바위가 튀어나와 있지만 충은 아니며, 배산임수 법칙을 따르고 있다. 단산의 뾰족한 바위가 가까운 곳에서 문필봉(文筆峯)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형상은 전형적인 화형(火形)을 이룬다.
대정향교는단산을 바라보며 들어가게 되는데 몇 개의 산자락이 강한 기운을 내포하며 뻗어 나온다. 그 정면에 대정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 대정향교의 내청룡은 매우 짧은 바위의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바위는 날카롭고 험하여 톱날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바위의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인지 몇 채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바위는 날카로운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 위험하며 뾰족하고 톱니같은 이 바위의 기운은 살기에 해당한다. 이를 살충(殺沖)이라 부르는데 사람이 다치고 심하면 이금치사(以金致死)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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