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구 학익동 183-4번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물론이고 십팔나한과 제자들, 불제자들의 사리가 모셔진 서광사 부속 사리박물관이 있다. 서광사는 학익고등학교 부근에 있다. 사찰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가정집 대문처럼 보인이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원이 있고 중앙에 석탑이 있다. 그 뒤로 현대식으로 지어진 2층의 요사가 있으며 정면에는 주불전 개념으로 관음전이 있다. 그 아래쪽으로 10평 정도의 사리 박물관이 있다.
각종 사리가 모셔져 있다. 비록 좁은 곳이기는 하나 사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일반인은 사리라고 하는 일종의 신비하고 경건한 물체가, 오색영롱한 구슬의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며,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사리란 무엇인가?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Kusinagara)에서 열반에 든 후, 그 지역의 마르타족이 쿠시나가라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려 할 때 주변의 8 부족이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자 도로나의 중재로 분사리가 시도되어 각지에 8 개의 사리탑이 건립되었다. 도로나는 사리의 양을 달았던 병(甁), 또는 호(壺)를 자기 고향으로 가지고가 병탑을 세우고 늦게 온 다른 한 부족은 이미 분사리가 끝났기에 재를 가지고가 회탑(灰塔)을 세워 모두 10개의 탑이 건립되었다 한다. 이후 아쇼카왕 때 여덟 개의 불사리탑 중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의 탑을 열어 팔만사천탑을 건립한 이후, 사리의 양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사리는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 수많은 불탑의 건립을 보게 된다. 건탑(建塔)의 기본조건은 사리이며 사리 없이는 건탑은 불가능 하기에 사리의 종류에 여러 가지 명칭이 나타났으며 용어 혼동의 여지가 있어 그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전신사리와 쇄신사리 -- 全身舍利 : 死屍를 의미. -- 碎身舍利 : 茶毘하여 남은 유골. ※ 리그베다시대 부터의 인도에서 행하여진 土葬과 火葬의 두방법에 따라 토장하는 遺體는 전신사리라 하고 화장하는 遺體는 쇄신사리라 불리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리의 개념은 쇄신사리를 의미하며 이 “사리”라는 용어는 팔리어의 Sarrira, 즉 전신사리를 의미하며 쇄신사리는 dhatuyo 라 하므로 용어상의 혼란이 있다.
② 신골사리와 법송사리 -- 身骨舍利(신골사리) : 화장후 남은 유골. -- 法頌(법송)舍利(法身舍利) : 불타가 설한 法, 법신의 의미 ※ 흔히 사용하는 사리의 개념은 두가지를 모두 포함함이 보통이나 때로는 骨사리 髮(발)사리 肉(육)사리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③ 변신사리(變身舍利) ※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將舍利』條에 보이며, 분사리도중 사리의 부족으로 대용품으로 봉안한 광석(鑛石)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④ 全身舍利 ※ 法華經(법화경) 第4「提婆達多品:제바달다품」에 天王佛이 般涅槃(반열반)에 든후 그 전신사리로 七寶塔(칠보탑)을 일으켰다고 하나 천왕불을 火葬(화장)하지 않고 埋葬(매장) 하였을 때 그 屍身(시신)을 어떻게 안치하여 탑을 건립 하였 는가는 불분명하고 多寶佛(다보불)의 경우 全身이 그대로 舍利라 칭함은 如來(여래)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개념들 중 중국. 한국. 일본의 학계에서는 舍利라고 하면 대체로 身舍利와 法舍利 두종류를 뜻함이 보통이며, 특히 佛舍利를 지칭할때는 眞身舍利라 하는데, 眞身은 法身을 가르키기도 하므로 진신사리 역시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2. 우리나라에서의 사리에 관한 개념. 신골사리는 대체로 탑에 봉안되지만, 승사리는 부도에 봉안된다. 도 계단(戒壇)에도 봉안되며 불상의 내부에도 봉안된다. 또 경전의 軸(축)의 상단을 안으로 깊이 파내어 그 구멍에 사리를 봉안하기도 하며, 고승의 유골을 부수어 흙과 섞어 유회상(遺灰像)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신사리는 형이하학적 물질이나 강한 상징성으로 인해 탑, 불상, 불경, 승상에 내재하게 되어 탑, 상, 경에 강한 상징성을 부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탑 안에는 이러한 신사리와 함께 법사리도 봉안되기도 하는데, 남계원지(南溪院址) 칠층석탑처럼 法華經이란 법사리만 봉안하는 경우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법사리는 金剛般若波羅蜜經(금강반야바라밀다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무구정광대다라니경), 華嚴經(화엄경), 緣起法頌(연기법송), 全身舍利經(전신사리경), 法華經(법화경) 등이다. 이 가운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그 경전에서 한부분을 취한 짧은 다라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사리라고 하면 흔히 작은 구슬 같은 결정체나 頭骨(두골), 손톱, 치아 등을 연상하지만, 사리에는 법사리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사리관은 三國遺事의 前後所將舍利 條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며 그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리의 최초전래 - 549년 梁(양) 武帝(무제)가 심호(沈湖)로 하여금 진흥왕에게 보내옴. ② 선덕왕 12년(643) 자장율사가 부처의 두골과 불아(佛牙), 불사리 백매, 부처가 입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을 가져왔는데, 사리는 셋으로 나누어 황룡사구층탑, 太化塔(태화탑), 통도사 戒壇(계단)에 두었다. ③ 송나라 선화원년(宣和元年 .1119)에 입공사가 불아를 가지고 옴(이는 신라의 의상이 중국에 있을 때 上帝로부터 받아 두었던 불아이며, 심향합(沈香盒)- 純金盒(순금합)- 백은함(白銀函)-유리함(琉璃函)- 나전함(螺鈿函)의 순에 따라 다섯 겹으로 쌌다 함) ④ 진흥왕 26년(565) 진(陳)에서 佛經論(불경론) 천칠백여 권을 보냈으면, 자장이 삼장(三藏) 四百餘函(사백여함)을 통도사에 둠. 이러한 내용과 함께 고려에 이르도록 大藏經(대장경)이 계속 거론됨을 통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리라고 할 때 진신사리와 佛牙(불아)외에 대장경을 마땅히 지칭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리라 할 때 眞身舍利는 물론 항상 法舍利를 포함한다 하겠다. (이상은 http://user.chollian.net/~kcj81/buddism/sari.htm에서 주로 발췌되었다. )
서광사의 배치는 규모보다는 짜임새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모든 배치가 풍수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현대식 건물로 지은 2층의 요사는 정확하게 계곡에 위치해 있다. 계곡은 계곡풍이 불어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곳이다. 관음전은 비교적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나 약간의 문제가 있다. 배산임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주산의 개념이다. 현재는 작은 지각에 의지하고 있지만 주산을 둥에 지는 배산임수의 법칙이 중요하다. 미륵불이 자리한 불전은 가장 훌륭하다 . 물론 건물의 개념은 아니지만 미륵불은 지각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어 기맥을 느낄 수 있다. 미륵전은 불자들이 구도 하는 곳이므로 기맥이 극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는 서광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와불은 지나치게 회화적이고 기맥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또 다른 안타까운 점은 사찰 눈앞을 가로막는 고속도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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