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의 사패지경계석
동두천 시의 축을 이루는 3번국도에서 광암동 (구)내행동 사무소 옆. 이곳이 생연동 369-10번지인데 길가에 문인석 모양을 지닌 사패지경계석이 서 있다. 어디로 보나 묘역의 문인석으로 보이는데, 특이한 유적이다. 높이 140㎝에 폭 47∼50㎝의 이 석물은 사패지경계석이라 부른다. 사패(賜牌)는 국왕이 발급하는 문서의 하나로 교지(敎旨)에 속한다. 사패지는 국가나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왕이 특별히 하사하는 토지를 말하는데 사전(賜田), 또는 별사전(別賜田)이라고도 한다. 이 사패지 경계석(賜牌地 境界石)은 조선 초기의 무신인 어유소(魚有沼, 1434∼1489) 장군이 1488년 국왕인 성종(成宗)과 함께 어등산에 올라 사냥을 하던 중 날아가는 솔개를 쏘아 맞혀 떨어뜨리자, 어유소장군의 뛰어난 궁술에 감탄한 성종이 어장군에게 현재의 동두천시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인석(武人石)을 세운 것이라고 전해온다. 이 무인석(武人石)은 맞은 편 생연초등학교 후문 우측에 있던 또다른 무인석과 대좌향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예전 생연초등학교 후문에 있었던 무인석은 동두천시청 청사 이전 얼마후 시청내 잔디공원으로 옮겨다 놓았으나 정확한 이유와 시기는 알 길이 없다. 일설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복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 양쪽에 세웠다는 설도 전한다. 불현동 녹지골프연습장 입구 도로 옆 조그만 텃밭 한가운데 서 있는 이 사패지 경계석은 일반 무인석보다 그 규모가 작으며, 머리 부분은 한국전쟁 때 그 일부가 파손되는 등 탄흔이 역력하다. 규모가 작은 이 석인은 아무리 보아도 문인석이라고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머리의 모습이 많이 풍화되었다고는 하나 무인의 갑옷이나 투구보다는 문인들이 사용하는 건(巾)과 닮아있고 품에는 장검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무인석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사패지에 경계석을 둔다는 경우도 처음있는 경험이다. 일차적으로 재산의 가치나, 경계의 목적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나 제한적이지만 풍수적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석인의 용도는 장승이나 석인, 혹은 성황과 같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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