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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권대항 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6-12-20 조회수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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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찾아가기

양주시 덕정동 산 40

* 관산 주안점

묘역에 올라보면 제법 넓은 부지다. 권대항(1610-166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應貞, 본관은 安東이다. 인조 8년(1630) 선조의제10녀 貞和翁主(溫嬪韓氏 所生)와 결혼하여 東昌尉에 봉해졌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禁軍廳 副總管이되었다.
먼저 신도비가 보인다. 신도비는 옥개석(屋蓋石)을 갖추고 있으며, 비좌는 백색 화강암으로 각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비신은 백색의 대리석으로 전면에만 비문이 있는데 후면에 탄흔이 3개소나 있다. 옥개석은 팔작지붕형태이다. 비문 말미에“崇禎戊辰後四十年壬子七月 日立”의 건립연기가 있어 현종 9년(1668)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권대항은 우애가 있고 신의가 있었던 인물인 모양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그는 1630년(인조 8)선조의 딸 정화옹주(貞和翁主)와 혼인, 이듬해 동창위(東昌尉)에 봉하여졌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곧 금군청부총관(禁軍廳副摠管)이 되었다. 성품이 곧고 모든 일에 매우 신중하였으며, 친족 가운데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권대항이 남긴 가훈이 아직도 안동김씨 문중에 전해지고 있어, 그가 가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가훈은 아래와 같다.

[修身者 人事之成始成終 徹止徹下 之要道也
益人爲常務 從篤之行
正心修己 治人之道]

“修身이라는 것은 人事의 처음을 이루고 마침을 이루며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는 重要한 道이다.
항상 힘써서 독실하고 돈후한 行實을 하여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 自己몸을 닦고 修養하라. 이것이 사람을 다스리는 道이다.“

입수에 올라 살펴보니 주산은 마치 병풍처럼 휘어지며 뒤를 감쌌는데 기이하게도 묘역에 이르는 입수룡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 힘이 미약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맥이 약하고 허하다.
당판은 넓게 퍼져 있다. 당판이란 자고로 마치 계란을 반으로 잘라 엎어놓은듯 보여야 한다. 이 형상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으며 단순히 형태만이 아니라 그 크기에 대한 비례는 물론이고 그 형태, 그리고 기맥의 흐름까지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대항의 묘역은 마치 펼쳐놓은 듯하다. 약간의 돋음이 있으나 이는 인작으로 보여진다. 인작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좌우가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보아 방풍은 뛰어나다. 앞이 열린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에는 내백호와 외백호 사이에서 득수된 물이 묘역 앞으로 흘러 내당수를 이루었을 것이다. 따라서 앞이 지나치게 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배산임수의 법칙에 입각해 양택지로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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