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장례식장 옆 주차장 옆길로 들어가면 산으로 들어가게 되고 불과 5분이 지나기 전에 수려한 신도비를 볼 수 있으며, 신도비 뒤의 능선상에 3기의 묘역이 있다. 이중에 가장 상부에 자리한 묘의 비석에는 묘비에 권전이라고 쓰여있어 주인이 누구인지 알리고 있다. . 권전(1490∼1521(성종 21∼중종 16))은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며 1409년 경술년에 태어났다. 자(字)는 군안(君安)이고 호(號)는 알수 없다. 부친은 참판을 지낸 권주(權柱)이고 조부(祖父)는 권이(權邇),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恒)이다. 1510(경오) 생원시, 중종(中宗)14년(1519년), 현량과시(賢良科試)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예문관수찬(藝文館修撰)이 되었다가 이해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파직,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 때 안처겸(安處謙)·정순붕(鄭順朋)·신광한(申光漢)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런데 묘역의 비석에는 통사랑(通仕郞)이라 기록되어 있으니 정말 조사한 자료가 맞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다. 그밖에 영의정 부사(領議政府事)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에 추증된 권전(權專)은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가 다르니 아마도 예문관수찬에 이른 권전이 바로 이곳 양주시에 묘역을 정한 권전으로 보여진다. 묘의 특징은 비록 낮은 산줄기를 주룡으로 취하고 있음에도 묘 위치가 대좌형에 유사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간혹 낮은 산지에도 나타나는데 이처럼 대좌형이 이루어진 당판의 경우에는 정돌취기에서 묘역을 정하듯 뒤로 밀착하여 묘을 정하는데, 이는 심혈에 따른 것으로 혈심이 입수룡 방향으로 밀착된 것이며 용맥상에 숨겨진 곳에 입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묘는 북동쪽의 좌향을 취하고 있어 북향에 속한다. 당판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혈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는 곳이므로 명당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리고 향(向)이 북을 향하고 있으므로 뒤가 낮아 사시사철 햇빛이 스며들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명당은 자연이 만들어 주는 것이며, 이처럼 북향을 이룰 때는 뒤가 낮아 햇빛이 늘 비추도록 하고 있다. 권전 묘역 아래의 묘에는 권박(權博)이라는 이름이 쓰여져 있다. 선조(宣祖)39년(1606년), 식년시(式年試)에 병과(丙科)에 등제한 권진기(權盡己)의 증조부(曾祖父)가 권박(權博)이라는 자료가 있다. 또한 현종(顯宗)10년(1669년)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에 등제한 권선(權?)의 숙부가 권박(權博)이라고 하니 그 연대와 역사성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후손들이 세운 권박의 묘비에는 [통훈대부상주목사진병마첨절제사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권공박지묘증정부인해주오씨부좌(通訓大夫尙州牧使鎭兵馬僉節制事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權公博之墓贈貞夫人海州吳氏附左)]라고 기록되어 있다. 권박의 묘는 권전 묘 아래 있다. 권전의 묘와 권박의 묘는 매우 가까우나 그 사이에 과협이 이루어져 분리된 당판임을 알리고 있다. 전형적인 유혈의 혈상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 하나의 묘는 비석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묘역 하단을 살펴보면 전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전순을 이용해 혈을 찾는 [전순심혈법]이 생각나는 경우다. 우선쪽이 지각이 뻗어나가므로 잉혈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선익이 발달한 것으로 유혈이다. 이와 유사한 지형에서는 유혈과 귀성, 혹은 잉육혈의 특징을 잘 살펴야 한다. 이 특성에 따라 혈심의 위치가 야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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