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림이 훼손되어 가는 사자암 상도동에서 전통사찰로 지정된 사찰은 사자암 뿐이다. 전통사찰 제77호로 지정된 사자암은 동작구 양녕1길 105-4 (상도3동 280)에 있다. 사자암은 1396년 무학대사가 한양의 기세를 다스리기 위해 사자형상인 이곳에 사자암을 창건하였고 태조 이성계는 이곳을 자주 찾아 국사를 논하던 곳으로 대사를 추모하는 뜻으로 이곳을 둘러싼 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했다. 유치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00미터를 오르면 사자암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긴 담이고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일주문 앞의 우람한 바위다. 상도동 국사봉 밑에 자리 잡은 ‘사자암’은 조계종 소속으로 조선 태조5년(1396) 무학대사가 한양천도 과정에서 풍수상의 이유로 창건했다 한다. 즉 서울로 정한 한양의 만리현(지금의 만리동)이 백호가 밖으로 뛰어 달아나는 모습이라 이것을 막기 위해 관악산에 ‘호압사’를 지어 호랑이를 누르고 사자형상인 이곳에 ‘사자암’을 지어 그 위엄으로 백호를 막았다고 한다. 이 절에는 많은 고승들이 머물러 수도했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호국도량으로서 명맥을 이어 왔다. 극락전에 조선초의 아미타불상이 안치되고 1846년에 지장탱화, 신중탱화, 1980년에 현왕탱화가 봉안되었다. 그 외에 산신각인 단하각, 칠성각인 수세전이 있다. 앞쪽의 당우 뒤로 극락전이 있다. 주불전인 극락전은 배산임수의 형국을 지니고 있으며 높은 산에서는 보기 드믄 와우형 지세다. 특히 눈에 뜨이는 전각은 수세전이다. 수세전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니 이 당우는 칠성각이다. 칠성각은 일종의 토종 문화가 불교에 녹아든 측면이 있다. 산신각이 불교와 융합한 것과 같다.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칠성각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공간이다. 사자암의 수세전은 기맥을 따라 지어져 있어 기도처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보여 진다. 더욱 시선을 잡는 당우는 단하각이다. 단하각이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 아니다. 입구에서 좌측의 바위틈으로 난 계단으로 오를 수도 있다. 단하각은 산신과 독성을 모신 곳으로 산신각, 혹은 독성각이라는 이름을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이 단하각이 바위에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자암이 애초부터 풍수적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도 호국도량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단하각의 배치로 보아서도 기도처로서의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하각에 서서 앞쪽을 바라보면 서울이 보이고 교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사찰의 터에서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교쇄다. 사자암은 교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심히 보면 지붕위로 보이는 나무들이 매우 가지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가 다시 살펴보면 담이 있고 내부에는 서너 그루 오래된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담 밖에도 수그루의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래도록 자란 나무라서 그 크기가 녹녹치 않다. 반수 이상이 사라졌는지 허하게 열린 곳도 있다. 전체적인 배치로 파악하면 이 나무들이 우연히 열을 지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찰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계곡풍을 막기위해 풍수림을 조성한다. 사자암의 경우에도 풍수림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많은 나무들이 사라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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