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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남양주 봉영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1-07 조회수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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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봉영사는 찾기 쉬운 곳에 있다.서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면 청량리역 앞에서 705번 좌석버스나 7번, 7-1번 7-8번 일반버스를 타고 대궐터 정류장에서 내려 정류소 앞 슈퍼 옆 골목길로 들어가서 20분가량 걸어가면 순강원이 나오고 순강원을 돌아 5분 정도 더 가면 봉영사가 나온다. 길가에 공장들이 많고 안내판이 없어 불편하지만 외길이라 찾기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개인이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서울에서 47번 국도를 따라 구리를 지나 퇴계원 옆으로 난 순환도로를 타고 이동이나 일동, 혹은 의정부 방면으로 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의정부가 아니라 일동이나 장현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이나 장현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다가 밤섬유원지를 지나 내각리 쪽으로 좌회전해서 순강원을 따라 돌아가면 된다.
순강원 입구에서 좌측의 좁은 길을 따라 언덕을 넘으면 조금 넓은 막다른 공간이 나오고 찻집과 약수터가 보인다, 차를 세우고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봉영사가 나온다.
아직은 정리가 덜된 듯 보이는 사찰이기는 하지만 차분하기는 그만이다. 사실 아직은 완벽한 가람의 조영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불사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새로이 조성된 무량전과 지장전이 중심 당우다. 이 사찰은 비보사찰이라 꼭 불자가 아니라도 풍수를 배우는 사람은 찾아보기를 권한다.
봉영사(奉永寺)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천점산(泉岾山,393m) 기슭에 있는 봉선사의 말사이다. 천점산은 천견산(天見山)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의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천견산은 광릉숲 남단 끝자락에 있는 산으로 마을 사람들은 샘재, 천견산이라고도 부르며 봉영사 비문에는 천점산(泉岾山)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천점산은 산 꼭대기에 샘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붙여진 산 이름인듯하다.
이 산 바로 아래에 신라때 세워졌다는 고찰인 봉영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절 법당 뒤로 우뚝 솟아있는 산이 천점산이다. 봉영사 옆에 순강원이 있고 봉영사로 들어가는 2차선 국도에서 50m쯤 들어가면 주택가에 비각, 즉 이곳이 대궐터(구궐지) 였음을 알리는 비문이 세워져있는 비각이 있다.
봉영사는 599년(진평왕 21)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봉인암(奉仁庵)이라 불렀다고 하나 이를 고증할 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755년(영조 31)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묘가 순강원으로 승격되면서 이절을 인빈의 원찰(願刹)로 삼았으며 이때 신실(神室)을 지었으며 절 이름을 봉영사로 바꾸었다. 그 후 절 지위가 크게 높아졌으며, 1877년(고종 14) 고종 숙부인 이공이 대대적인 중수공사를 하였다. 이후 계속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봉영사에는 대웅보전과 명부전, 승방, 요사, 그리고 사적기와 혜경선사 공덕비 등이 있는데 모두 근래에 건립된 것이다. 대웅전에 있는 아미타불화는 1853년(철종 4)에 조성되었고 신중도와 산신도는 1903년 (광무 7)에 각각 조성되었다.
봉영사의 본당(本堂)은 무량수전이다. 주불전에는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는데 가장 흔한 것이 대웅전(大雄殿)이다. 그와 달리 무량수전이나 미륵전, 아미타전등이 사용되고 최근 큰법당이라는 이름도 사용한다. 봉영사는 무량수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무량수전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다. 봉영사의 주불은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처이시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미타(彌陀)라고도 한다. 이 부처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다. 아미타(阿彌陀)란 이름은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 아미타유스(amityus)와 아미타브하(amitbhas)의 한역(漢譯) 음사(音寫)이다.
아미타불의 기원은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 와서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구히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를 보살사상(菩薩思想)의 견지에서 설법함으로써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으로 직시되고 구원불로 존숭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 등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세자재왕불(世子在王佛)이 출현했을 때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으나 무상의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본원(本願)으로서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우고 5겁(五劫) 동안 수행을 거듭한 결과 서원과 수행을 성취하여, 지금으로부터 10겁이라고 하는 오랜 옛날에 부처가 되어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불토(十萬億佛土) 떨어진 안락(安樂)이라고 하는 정토(淨土)에서 교설(敎說)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뭇 생명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대승경전 속에 관설(關說)되어 있는 가르침은, 특히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 염불을 통하여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얻는 불교의 일대 계통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의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은 6, 7세기 무렵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에 의하여 널리 보급되고 체계화되었다. 그는 정토교의 보급을 위하여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장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교학승(敎學僧)들도 미타신앙 전파에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현실은 사람들을 미타신앙에 귀의하게 했으며, 얼마 안 가 곳곳에 수많은 아미타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미타사상은 선(禪)과 융합되어 지눌(知訥)·보우(普愚)·나옹(懶翁)·기화(己和)·휴정(休靜) 등의 고승을 통하여 맥이 이어져 내려와 침체된 불교계에 신앙의 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된다.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주로 봉안하며, 그 밖에 극락의 구품연대화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나 아미타탱화도 봉안한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무위사 극락전 등이 유명하다.
이미타부처를 모시는 공간은 무량수전(無量壽殿)·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웅전(大雄殿)·대적광전(大寂光殿)과 함께 3대 불전으로 손꼽을 만큼 많이 건립되었다.
절 주위를 둘러보니 특이하게도 뒤가 두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합수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물은 지하에 관을 묻어 돌렸지만 과거에는 물소리도 들렸을 것이며 간혹 물이 범람하여 사찰을 침범하기도 했을 것이다.
사찰을 세우는 이유중 하나는 비보의 목적이다. 물론 봉영사가 순강원의 원찰이라고는 하진만 이미 이전에 사찰이 세워져 있었고 무량수전의 자리가 이처럼 물이 합쳐지는 자리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서는 비보사찰의 성격이 강했음을 알 수있다. 즉 문서나 자료로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과거 이 골짜기에서 나온 물들로 인해 마을이 피해를 입거나 사람이 죽거나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바람과 물의 피해를 부처의 가피력으로 막아보고자 절을 세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절 뒤로 산책길이 있다. 길을 따라 오르니 순강원으로 이어지는 담아닌 담을 만난다. 이 담 사이에 작은 통로가 있어 출입이 가능하다. 절입구에는 약수터와 다원이라는 전통찻집이 있어 차와 전통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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