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불리는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영남평야의 젖줄인 낙동강과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한강, 삼척의 오십천을 이루니 국토의 종산이자 반도 이남의 모든 산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이다. 태백산은 천제단이 있는 영봉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1567m) 동쪽에 문수봉(1,517m), 영봉과 문수봉사이의 부쇠봉(1,546m)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봄이면 산철쭉, 진달래의 군락지가 등산객을 맞이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한여름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며 가을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수놓으며 겨울은 흰 눈으로 뒤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을 보여 주는 곳으로 남성다운 중후한 웅장함과 포용력을 지닌 육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낙조는 장엄하여 세속을 떠난 천상계를 연상케 하고 맑은 날 멀리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태백산이 가지고있는 자랑거리다. 이 밖에도 최고높은 곳에 위치한 한국명수중 으뜸수인 용정, 용담이 있다.
태백산 천제단은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에 있다. 태백산 정상 두 개의 봉우리에 각기 하나씩의 단이 있다. 장군봉에는 장군단이, 주봉에는 천왕단이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문수봉으로 가다보면 구을단도 있다. 이 세 개의 단을 모두 합쳐 천제단이라 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에 보면 “5세 단군 구을(丘乙) 임술 원년에 태백산에 천제단을 축조하라 명하고 사자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외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에도 국가적 제사를 지낸 곳임을 전하고 있다. 천제단은 매일 수십 명 정도의 무속인들이 기도하는 무속의 성지로서 개천절날 천제와 굿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사실 태백산은 무속(巫俗)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태백산 정상 동쪽 아래 사찰 망경사(望景寺)의 요사채는 늘 이들 기도객들로 북적거린다.
천제단은 1991년 10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둘레 27m, 너비 8m의 제단으로 태백산 정상에 있다. 산꼭대기에 이와 같은 큰 제단이 있는 곳은 한국에서 하나밖에 없다. 제작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령과 백성들이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으며, 한말에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다. 특히 한말 의병장 신돌석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고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런 제단이다.
위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이며,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 을 나타낸다. 10월 3일 개천절에는 이 곳에서 천제를 지내며, 강원도민 체육대회의 성화를 채화한다. 자연석 녹니편마암(綠泥片麻岩)으로 쌓았으며 둘레 27.5m 높이2.4m, 좌우폭은 7.36m 전후 폭은 8.26m로 약간 타원형의 원형제단(圓形祭壇)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원형 돌담 속에 사각형의 돌제단이 있으며 그 북쪽에 돌비(石碑)가 세워져 있는데 돌비에 「한배검」이라고 석각되어 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인 산으로 예로부터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때에는 137년 일성이사금 5년 10월에 왕이 친히 북순(北巡)하여 태백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300년 기림이사금 3년에 우두주에 이르러 태백산에 망제를 지내니 낙랑, 대방의 두 나라가 항복하여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백산 천제단은 단군조선 시대부터 하늘에 제사하던 성스런 장소이며 삼한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도 신라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삼도(강원, 경상, 충청)의 수령들이 천제를 지낸 곳이다. 천제단은 백두대간의 중추에 위치하여 한강 이남의 모든 산천(山川)의 뿌리가 되는 꼭지점에 쌓아져 우리 겨레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거룩한 제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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