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암(靑蓮庵)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474-1번지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 용주사의 말사다. 먼저 보이는 것은 유치원이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유치원 때문에 뒤쪽으로 자리잡은 사찰 전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난 종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온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서서 바라보면 암자가 아닌 사찰의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이 청련암에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먼 옛날 고려의 창건주 태조가 후백제를 정복하고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찰을 세웠다. 산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를 보고 필히 부처가 가르침을 주는 교시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리고 그 산을 광교산이라 하였는데, 이후 산 이름이 각지에 알려지면서 영험이 생겨났고, 이에 많은 스님들과 선남선녀들이 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골짜기마다 암자가 들어섰고, 모두 89개소에 이르는 도량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낱 전설로 전해 내려와 현재 그 자취를 찾을 순 없지만, 현재 광교산에는 그 뜻을 이은 부처님의 진실도량 청련암이 조선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태조가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여긴 것은 현재 수원의 진산으로써 그 위용이 대단하였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지금은 수원의 중심지로서 시가지가 형성되었지만, 그 길의 끝 광교산 아래에는 여전히 여법한 도량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퇴락하여 빈 터만 있던 것을 창건주 청련스님이 지어서 청련암이라고 칭했으며, 이후 조선후기 세도가인 흥선대원군의 지원과 영친왕 이은의 어머니 귀빈 엄씨의 기도처로서 현재 가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귀빈의 화주와 보살 임씨의 도움으로 수월도량으로서 그 맥을 이어갔으며, 나한도량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손수 실천하는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식 건물이 있어 그저 그럴 것 같아 보이지만 절의 면면을 둘러보면 대단히 풍수적으로 안정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우선 주산이 광교산으로 청련암에서는 금형대산(金形大山)이다. 전국의 대가람을 살펴보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주산을 금형산으로하고 있는데, 청련암의 주산인 광교산도 대금형(大金形)이다. 좌우로 뻗어나온 지각이 교쇄를 이루었다. 인작이 가해져 우측의 백호가 앞쪽에서 낮아진 듯 하지만, 일정한 높이를 지녔던 것으로 보여진다. 청룡은 감아들다 앞으로 뻗어나갔고 백호는 고리처럼 환포한 형국이다. 약간 낮아지기는 했지만 환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규모가 대단히 큰 대웅전 좌우를 살피면 각기 칠성각과 독성전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 앞쪽 좌우로는 청풍당과 환희원이 있어 청룡과 백호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자연이 이루어 넣은 청룡 백호에, 인위적인 청룡 백호가 이루어진 이중의 구조다. 앞쪽은 환희루와 범종각이 있다. 이리보면 ㅁ자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이중 종루와 환희당은 안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찰의 배치가 배산임수(背山臨水)에, 풍수지리법에 따라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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