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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라한 안당의 묘역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2-06 조회수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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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안당(安塘, 1460∼1521 세조 6∼중종 16)의 묘가 광주시 퇴촌면에 있다. 중부고속도로 경안 (광주) 나들목을 나와 서울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우측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이 도로는 45번 도로이며 중간에 88번 도로와 이어진다. 각각 팔당댐과 퇴촌면으로 이어진다.
이 도로를 타고 고개를 하나 넘어 달리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직진하면 45번 도로로 팔당댐으로 이어지고 우회전하면 88번 도로로 톼촌면 사무소가 있는 광동리로 가는 길이다. 이 삼거리에서 좌측 마을이 도마리다. 우측을 보면 최항의 묘가 보인다.
삼거리에 서 직진방향으로 10여미터를 가면 길을 끊어 마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 곳에서 좌회전 하여 약 100미터를 가면 마을 중앙으로 내려온 산줄기를 만나는 데 이 산줄기 앞에 흰색 작은 비갈이 있다.비갈에서 20미터를 올라가면 산 능선인데 우선 2개의 비석이 먼저 보이고 묘역이 있다. 좌측에 비가 서 있는데 안당의 묘임을 알린다.

안당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언보(彦寶),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서울 출신이다. 1481년(성종 12)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사성을 거쳐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7년(중종 2) 정난공신(定難功臣) 3등에 책록되고, 1509년 대사헌을 거쳐 형조·병조참판,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5년 이조판서, 18년 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가 같은 해 5월 우의정에 올랐다. 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영의정 정광필(鄭光弼)과 함께 조광조(趙光祖) 등을 변호하여 구원하려 하다가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21년 아들 처겸(處謙)이 기묘사화를 일으킨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을 제거하려 했다는 혐의로 처형되자, 그도 연좌되어 교사형(絞死刑)에 처해졌다. 시호는 정민(貞愍).

안당의 역사적 가치는 제쳐두고 우의정을 지낸 사람의 묘역으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물론 아들의 역적누명에 따라 당시에는 제대로 장사조차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묘역 위에 서서 보면 좌선방향이 불규칙하게 밀려 들어온 것을 알 수 잇다. 계곡은 아니지만 살집이 없고 뷸규칙하다. 그러나 오른쪽은 평탄하다. 이름하여 좌우측의 형상과 모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니 편산이다.
자고로 음택의 명당은 혈이다. 혈은 특징이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당판이 있다는 것이다. 안당의 묘역은 당판이 보이지 않는다. 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맥을 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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